전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Nameless

구독자님의 댓글입니다.

마작가님 채널에서 영상만 시청하다 답답한 마음에 하소연뿐이 안 되겠지만, 공감되는 내용도 있어서 댓글을 답니다. 올해 34살이고 제 분야에서 세계 탑5위 안에 드는 박사과정 프로그램으로 유학가서 노력하다 코로나시대가 일어나 집에서 격리된채 조교업무, 코스워크하다 정신적 스트레스, 간경화, 통풍까지 와서 이러다 40대에 죽는 것도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구나 느낌이 들어, 포기하고 귀국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건강이 우선이고...제가 진정으로 하고싶으며 즐길수있는 일을 하길 원한다고 말씀까지 해주셨지만 오히려 더 자신감이 사라지고 결국엔 실패/패배한것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숨이 안쉬어지는 사막에서 걷는 느낌입니다. 제가 건강관리만 잘했더라면 교수까지 할수있는 지적능력이 있는데도 못됐으니 죄책감도 들고 제 잘못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듭니다.. 반면에 40-50대쯤 암같은 큰 병이 생겨 모든일을 그만두어야하는 상황이왔더라면 교수가 돼었던, 기업에서 소위 잘나가는 타이틀을  못 두르는순간, 그 순간 나는 무슨 존재일까? 오히려 미래에 일어날 악운을 미리 경험한건가 생각도 들고요. 마작가님께서 30대 구독자에게 하고싶은 말을 영상으로 남기셨는데 그중 첫번째 포인트에 공감을 했습니다. 직업/직책과 자신을 분리시키면 자신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족적이나 가치관으로 보면 전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현재는 매우 방황중이지만 훗날 노년이 오면 30대때 이런생각을 갖었던 것이 그래도 다행이었다라는 순간이 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9:31은 칙센미하이 (Csikszentmihalyi)입니다.
- 구독자 Nameless


Nameless님. 어서 오세요. 독립의 세계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건강 때문에 사회적으로 약속된 길이 좌절되었지만, 인생 길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붓다는 왕가에서 뛰쳐 나왔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셨습니다. 소로우는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조셉 캠벨은 시골로, 니어링 부부는 자급 자족의 세계로…


모든 위대한 일에 대해 잘 알고 계시잖아요. 남들이 좋다고 한 길을 걸어가는 것은 모든 성인과 멘토들이 말하는 죽음의 길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길, 처음엔 가시밭 길인 줄 알았지만 나중엔 위대하게 평가 받는, 그런 길… 구독자님은 마치 운명처럼 이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저 역시 퇴사 전에는 사회적으로 보장받는 위치에서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마지막엔 내적인 갈등과 회사와의 갈등으로 그 길을 접었지요.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저 자신을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구독자님이 공감하셨다는 말씀을 떠올려 보세요.

직장을 빼면 나는 누구인가?

마작가


왜 그 말에 공감하셨을까요.


아마 구독자님의 안에 있는 또 다른, 그리고 아마도 ‘더 큰’ 의미가 갈증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닐까요.


좌절 앞에서도 철학적인 물음으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구독자님의 모습에 박수를 보냅니다. 34세의 저라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실의에 빠져 방황하고 시간을 허비했을 것 같습니다.


힘 내세요. 지금은 일단 치유와 회복에 전념하시기 바랍니다. (제 최근 영상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 생기면 또 전해주세요. 덕분에 뜻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많은 분들께서 구독자님의 사연에 공감하고 또 자신을 되돌아 볼 거라 확신합니다. 사연을 나눠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우연인지, 최근 박사 학위까지 받고 공부를 지속하던 한 구독자께서 모든 걸 접고(!) 한국으로 귀국하셨어요. 직접 만나뵐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요. 이 글을 본다면 그 선배 구독자께서 한 줄 도움을 주시리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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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Nameless”의 4개의 댓글

  1. 핑백: 간소한 주간 계획 – 2022년 48주차 – I Love MaLife

  2. 아카데믹 커리어 여정이 얼마나 고단한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댓글을 남기지 않을 수가 없네요 (참고로 제가 마작가님이 말씀하신 박사과정 후 모든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귀국한 사람입니다^^).

    저 또한 미국 박사과정에서 과도한 과제 및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쓰러지기도 하고 몸에 마비가 오기도 했었어요. Nameless님 가족분들과 똑같이 저의 가족도 건강이 가장 우선이라며 언제든 그만두고 돌아오라고 말했었지요. 그런데 ‘언제든 그만두고 돌아가도 된다’고 생각하니 도리어 할 만 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박사과정 동안 여러 편의 SCI(E) 논문을 출판하며 학과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학위과정을 마칠 수 있었지요. 심리언어학/뇌언어학을 전공한터라 한국 대학에서 fit을 찾을 수 없었던 저는 조금이나마 한국과 가까운 곳에서 근무하길 원하는 가족들의 바램에 따라 홍콩대학에서 포닥연구원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faculty로 일하게 되니 이제껏 제가 꿈꿔오던 삶과 전혀 달랐어요. 교수로서의 삶은 그나마 자기 결정권이 많이 보장된 삶일 줄 알았는데 제 착각이었습니다. 대학들 또한 결국 돈이 있어야 운영되는 곳이라 그 조직에 속해있는 구성원들은 학교에서 정하는 방침들을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걸 그 때서야 깨달았습니다. 교수도 대학이라는 기관에 고용된 사람일 뿐인데 왜 그걸 모르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인생에서 점차 자기 결정권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연구과제도 제가 정말 관심있는 연구영역이나 주제라기 보다는 연구비를 잘 받을 수 있는 쪽으로 변화되어야 했고, 논문 실적을 위해 제 모든 시간들을 바쳐야 했습니다. 하루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계절이 바뀌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제 삶의 밸런스는 완전히 무너졌었어요. 티칭, 연구, 컨퍼런스 일정 외에 삶이라고 이야기할 만한 것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한국에서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지요. 코로나 이후 삶의 의미에 대해 내내 생각하던 저는 삶과 죽음에 대해 더 묵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라는 사람에 대해서두요. 지금껏 방황하며 확실히 깨달은 사실 하나는 제가 ‘자기결정권이 없는 삶이나 관계’를 극도로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그 길에서 이탈하기로 했어요.

    학교에서 근무하는 내내 제 머리에 그려진 이미지는 ‘도착지’도 알지 못하고 미친듯 질주하고 있는 열차였어요. 어느 날은 숨이 잘 쉬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 미친 속도를 따라 가다보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 점차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Assistant Professor는 Associate Professor가 되면 좀 괜찮아지겠지 했지만 막상 Associate Professor들은 Professor로 승진해야 하니 Assistant Professor 때 보다 더 정신이 없고 해야할 일이 많다고 했습니다. Professor가 되어 좀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연구도 하고 여유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거기 계시는 분들의 모습은 제가 기대하던 것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미 작은 글씨는 보기 힘들만큼 눈이 안 좋아진 상태에다가 여러 질병으로 건강 문제를 호소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았죠.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이제서야 하게 되나 보다 했는데 곧 은퇴를 앞두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모습은 씁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지금 단계도 이미 삶의 밸런스가 과하게 무너졌다고 느낀 제가 그 뒤의 여정에서 그 일을 하며 행복해 할 지 자신할 수 없었습니다. 저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 느껴졌어요. 인생 후반기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서 나머지 인생은 정말 저 다운 삶을 살고 싶어졌습니다. 그 때 제가 너무 애정하는 마작가님을 알게 되었어요.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게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제 마음 속에 들어왔다 나가신 것처럼 하시는 말씀마다 제가 생각했던 것과 그 결이 같아서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였던거 같아요. 저에게 작가님의 모든 말씀이 울림으로 다가왔던 이유가 말이죠.

    지금은 어떠냐구요?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고 홍콩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와 지금도 열심히 방황중입니다. 프리랜서든 온라인 사업이든 그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는 것은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박사과정을 통해 새롭게 배우는 과정이 어떠한 것인지 이미 몸으로 익혔으니까요. 하지만 ‘그래서 이제 너 뭐할래?’라는 질문의 끝에는 저에 대한 물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넌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거야?’라는 물음 말이죠. 이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진짜 제가 주인이 되는 삶을 시작할 수 있다라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그래서 저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경험하며 저의 반응들을 살피고 기록하고 있는 중입니다.

    삶의 만족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전보다 훨씬 높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매일 저도 모르게 입밖으로 ‘너무 행복하다’는 말이 나오거든요. 예쁜 하늘을 올려다 보며 감상할 수 있는 것, 바람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것, 좋은 사람과 맛난 음식 먹으며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 것. 이 모든 일들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이전에 공부만 하느라 알지 못했던 세상 것들을 탐험하며 제 반응을 살피는 과정도 감사하고 행복하구요. 어렸을 때 했어야 할 자신에 대한 공부를 이제서야 제대로 하는 느낌입니다.

    삶은 가끔 우리에게 예기치 못한 레몬들을 던지죠. 하지만 그러한 시간들을 통해 도리어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Nameless님도 충분히 휴식하시며 건강 회복하시는 동안 자신에 대해 더 잘 이해하실 수 있는 시간들을 보내실 수 있으시리라 믿어요. 그리고 대학교수라는 삶에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대답하실 수 있다면 그것을 반드시 대학이라는 조직의 틀에서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대답하실 수 있으시리라 믿어요.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면 이후 그것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반드시 어느 조직에 속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Nameless님의 아름다운 방황과 이후에 있을 나다운 삶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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