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시
응시 사십대가 되어서야 알게 된 것들이 있다. 내가 좇던 것을 이제야 응시할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이렇다. 누구나 그렇듯 내 인생에도 중대한 결정이 많았다. 그 한순간의 반응이 이어져 내 인생의 갈림길마다 제 역할을 했다. 나는 그 선택이 내가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되돌아 보니 아닌 것 같다. 이제 나는 응시할 수 있다. 결정의 순간마다 내 […]
요즘 내 주변 사람들한테 들은 이야기 중 남기고 싶은 것들이다. 1. 운동 신경이 뭐, 아유, 좋습니다. 트레이너에게 케틀벨 스내치를 배우다가 들은 말이다. 내 인생에서 운동에 얽힌 특별한 기억은 없다. 그래서 이 말이 기분 좋게 기억된 것 같다. 이 말과 함께 고구마 줄기처럼 얽혀 나올 기억들도 함께 적어 본다. 초등학교까지는 나는 단거리 계주 선수였다. 그래봤자 운동회
날개가 있다고 다 새는 아니다. 그러나 새라면 날개가 있다. 날개를 만드는 것은 새라는 정체성이다. 새라서 그렇다. 너무 간단한 대답이다. 불운하게도 자신이 닭이라고 생각하는 새가 있었다. 누군가는 네가 잘하는 일을 찾으라고 했다. 어떤 이는 네가 타고난 천성을 찾으라고 했다. 네가 잘하는 일을 찾아. 네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 뭐야. 네가 타고난 천재성을 탁하고 켜줄 그런 마법의 스위치를
퇴사를 앞둔 분들께 꼭 하는 조언이 있다. 하고 싶은 일을 서너 가지 정해놓으라는 거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가정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간 낭비를 막을 수 있다. 내게도 몇 가지 가정이 있었다. 그 가정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퇴사 후 내가 했던 일을 적어본다. 책을 쓰기 시작했다. 자기계발서로 포지셔닝하면 강의를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어렴풋이 생각했다.
흔히 말하는 안정적인 삶이란 이렇다. 매달 들어오는 급여, 회사에 소속된 정규직, 반복되는 일상. 한 마디로 평균을 추구하는 삶이다. 이것이 진짜 안정일까. 그렇지 않다. 안정적인 삶이라는 커다란 착각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무엇이 진짜 위험이고, 무엇이 진짜 안정인가?” 여기에 대해 자기만의 답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후회한다. 난 잘 살고 있는데,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냐고? 심판의
평균적인 삶이 가장 위험하다 (안정이라는 착각) 더 읽기 »
한 할머니가 손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떤 문이 닫히면 그 문 앞에서 울지 마라. 반드시 또 다른 문이 열린단다.” 그 말을 듣고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나는 한 발 더 나아가 이런 생각을 해봤다. 새로운 문이 열리려면 기존의 문이 닫혀야 한다. 사람들은 보통 두 문을 동시에 열고 싶어한다. 하나는 유지한 채 다른 하나를 열고 싶어한다.
2024년은 바빴다. 사무실을 두 번 옮겼다. 공유 오피스에서 20평대로, 그리고 40평대로. 또 있다. 집을 두 번 옮겼다. 1기 신도시의 안정된 아파트를 사서 인테리어를 하는 바람에, 한 번은 임시 집으로, 또 한 번은 진짜 입주로. 그래서 바빴다. 내가 아파트를 판 이유 그중에서도 내가 아파트를 산 것은 꼭 말하고 싶다. 나는 2009년인가, 광명역 KTX역이 들어오기 전에 그쪽
내가 아파트를 산 이유 (가짜 안정 vs 진짜 안정) 더 읽기 »
나를 재촉하지 마라. 혼자만의 시간이 나를 바꾼다. 바쁜 일상은 정말 중요한 질문들을 하찮게 만든다. 때로는 질문 자체를 숨겨버린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들이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내가 타고난 기질은 무엇일까.”“그 길로 나는 가고 있는가.” 그 질문을 꺼내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하다. 여유가 필요하다. 누구도 나를 재촉하지 않고, 나도 나를 재촉하지 않는 시간. 그곳에 나를 놓아야
2024년 2월에 쓴 글. 열흘째 야근을 하고 있다. 오늘은 밤 10시까지 일했다. 사실은 열흘이 더 된 것 같다. 3주째 강원도 별장에 가지 못했다. 여기서 야근이란 내가 경영하고 있는 법인에서의 이야기다. 내 시간의 90%를 법인에 쏟아 붓고 있다. 당연히 정상적이지 않다. 내가 가진 3개의 정체성 중에 하나에만 몰두하다 보니, 나머지 정체성인 크리에이터로써, 자연인으로써 삶에 지장을 준다.
2010년에 첫 책을 썼다. 스물 아홉에 쓰기 시작해서 서른에 책이 나왔다. 그 책에는 내 소개가 적혀있다. 강원 춘천에서 태어났다. 춘천, 강릉과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다. 2003년 서강대학교를 졸업했다. 1995년 무크지 <동해람>에 <그리움> 외 1편의 시를 발표했다. 1999년에 이만희 작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를 공연했다. 2000년에 마임 공연 <새>를 작/연출했다. 2000년 단편 소설 <나무인형>을 발표했다. 같은
다시 쓰는 자기 소개 (인생 전환에 대해) 더 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