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요. 그러면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다.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나는 육군 장교로 약 3년을 복무했다. 남들보다 나는 군생활에 좋은 추억이 많다. 산과 들을 누비고 다니는 게 좋았다. 야외에서 훈련을 하면서 식사를 하는 게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병사들과 담배를 피우고 잡담하며 나른한 낮잠도 잤다. 아주 간소한 생활이었다. 깔끔한 수직 구조 덕분에 정치가 들어올 자리가 없었고, 생계를 걱정할 일도 없었다. 다만 딱 한 가지. 내가 군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옥 같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내가 왜 군대에서 이런 훈련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이 없었다. 그저 해야 하기 때문에 했을 뿐. 나에 대한 공부는 이 정도였다.

그 다음 나는 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영업은 체질에 맞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지 않았다. 특히 내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억지로 만나고 그들에게 마치 약점을 잡힌 것마냥 행동해야 했다. 때로는 이유 없이 광고비 같은 것을 갈취당한 적도 있다. 이유나 목적이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돈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하루하루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도 연봉이 높잖아. 그래도 사람 만나는 일이니 사는 데에 도움이 되겠지. 이런 것도 다 경험 아니겠어. 뭐 이런 생각으로 버텼다. 아직 서른도 안 된 놈이 벌써 뭔가를 포기한다는 것은 나약한 놈으로 찍히던 시기였다. 나에 대한 공부는, 영업에서는 이 정도였다.
그러다가 나는 본사의 마케팅으로 발령이 났다. 마케팅이 단순히 뭔가를 팔아제끼는 게 아니라는 걸 처음 알았다. 신제품 개발부터 시작해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연구해서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으로 풀어내고, 결국엔 돈을 벌어들이는 아주 큰 개념이었다. 모든 것이 신세계였다. 말 그대로 짜릿했다. 그중 내가 특별히 좋았던 부분이 있다.
첫째 창작이었다. 연구 과정에서도, 경영진을 설득하는 과정에서도, 소비자의 마음을 얻는 과정에서도, 제품명과 주요 핵심 문구를 정하는 과정에서도, 광고 문구를 정하는 과정에서도, 그리고 이 모든 전문가들에게 설명하고 소통하고 설득하는 과정에서도 글을 창작하는 것은 가장 근간이었다. 나는 육군 장교나 영업 사원을 할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글로 소통”하는 것의 쾌락과 미묘함을 제대로 맛보았다.
둘째로 좋았던 것은 큰 세상이었다. 내로라하는 광고 회사, 제작 감독, 연예인, 카피라이터, 연구자, 홍보 회사와 토론하고 소통하면서 나는 이제서야 비로소 시골 사람에서 서울 사람이 됐다고 느꼈다. 물리적인 큰 세상도 좋았다. 나는 초등학교 때 동네 친구에 이끌려 영어를 배우러 다녔던 미군 부대 말고는 거의 처음으로 미국 사람들과 어울려 보았다. 내가 꽤 영어를 잘한다는 사실도, 꽤나 스마트하게 일을 처리한다는 사실도 그렇게 깨달았다.
이후 나는 마케팅 전문가가 되기 위해 진짜 외국인들이 즐비한 회사로 이직했다. 두 군데의 외국계 회사를 다녔다. 마케팅의 모든 장점은 그대로였다. 나는 더 큰 책임자가 되었고 내 입맛에 맞게 꽤 훌륭한 브랜드 전략을 수립하고 성과를 냈다.
말하자면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그 커리어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직장 생활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창작이 좋았고, 큰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후로는 달랐다. 나는 늙기 시작했고, 이미 늙어버린 선배들의 초라하고 기품 없어지는 두 눈에서 내 미래를 보았다. 억대 연봉, 십 수명의 팀원, 입이 떡 벌어지는 혜택, 계절마다 가던 해외 출장도 더 이상은 약발이 서지 않았다. 이것들을 포기하더라도, 나만의 것, 나만의 인생, 그래서 죽을 때까지 키워갈 수있는 나만의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퇴사하면서 동시에 백수가 되었다. 나는 준비없이 퇴사해서 독립한, 그래서 자기 인생을 사는 상징적인 소시민이 되고 싶다. 이 블로그도 그중 하나다.
지금은 그래서 어떠냐고, 사람들이 묻는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
그런데 이 말은 잘 새겨들어야 한다. 매순간 하고 싶은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말을 조금 더 풀어쓰면 이렇다.
나는 주로 40대 중후반부터 60대 중후반의 특수한 수요층을 대상으로 사업을 키우는 중이다. 남성이 70%이고 여성이 30% 정도 된다. 그중엔 귀품과 교양이 넘치고, 훌륭한 인생을 겸손하게 담아내는 본받고 싶은 인생 선배가 많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그말은 나이가 들면서 고집이 세지고, 변덕이 심하며, 철저히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을 한 달에 어림잡아 300명씩 상대한다.
그런데도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똑같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한다면, ‘빌어먹을’이라는 소리가 입에서 떨어질 날이 없을 테다. 이 일에는 비전이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가.
첫째, 나는 고객들을 상대할 때 이메일로 소통한다. 정보를 간결하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멍때리고 글을 썼다간 정신이 번쩍 들 일이 많다. 뿐만 아니다. 이메일로 그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일도 한다. 한마디로 영업이다. 이메일을 잘 쓰면 고객들은 감동했다고 말하며 바로 계약을 체결하고 수백만 원을 턱하니 송금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매일 창작을 통해 내 실력을 발전시키고, 사람을 감화시키며, 그 결과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와! 발품을 팔아서도 아니고, 공장을 돌려서도 아니고, 알랑방귀를 뀌면서 춤을 춰서도 아니다. 창작이다.
나는 창작을 통해 사업을 키우고 있다. 그것도 아주 최전선에서 돈을 벌어오는 창작이면서도, 교양과 감성으로 무장한 통찰력을 요구하는 글쓰기로 말이다. 이쯤 되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말이 너무 당연하다.

둘째, 마케팅과 창의적인 생각이 사업의 핵심이다. 내가 하는 사업은 주로 유튜브 광고와 인터넷 상의 입소문을 통해 고객들이 유입한다. 길모퉁이에 상점을 열고 마냥 기다리는 게 아니다. 전단지를 뿌리는 것도 아니다. 차별성 없는 똑같은 문구로 네이버 상단에 검색 광고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 회사 홈페이지를 방문하도록 만들기 위해, 나는 소비자 타기팅 전략을 갈고 닦았으며, 그들이 좋아할 만한 광고를 디자인했다. 유입했을 때에는 우리의 서비스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정보를 압축하는 능력을 연마했고, 홈페이지를 구경하면 할수록 우리의 서비스에 빠져들도록 스토리라인도 수백 번도 넘게 뜯어 고쳤다. 최적의 문구를 만들기 위해 꿈에서도 광고 카피를 만들었다. 단 한번도 해보지 않은 디자인을 배워 말도 안 되는 엉터리 광고 시안을 만들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나는 프리랜서 시절부터 ‘월 천만 원’을 진작에 넘겼다. 지금까지 열거한 이 모든 것들은 마케팅이요 전략이다. 교과서가 아니라 실제 수익을 가져 오는 실전 마케팅이다. 굽신거리며 사달라고 하는 구식 영업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은 기다려서라도 사게 하는 정교한 마케팅 전략의 요체다.
내가 때로 답답한 시니어 고객들과 이메일로 입씨름한다는 것은, 우리 사업의 마케팅이 시장과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먹혔으며, 그 결과로 우리에게 돈을 낸 ‘고객’들과 관계를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내가 사랑하는 마케팅은 자본주의의 예술이 다름 아니며, 그 과정에서 창작은 근간이요 척수다. 이쯤 되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말이 아주 당연하다.
마지막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근거는 사람이다. 나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성찰이 없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무척이나 못 견뎌 한다. 게임과 쇼핑과 파티를 좋아하지만 일 년에 책을 한 권 읽지 않고, 인류의 멘토나 자기 성찰에는 하품을 하는 그런 사람들은 나와 가장 먼 부류의 사람들이다. 마흔 즈음이 돼서야 그걸 깨달았다. 회사에 가면 그런 사람이 아주 많다. 회사란 자신의 나약함과 초라함을 숨기기에 아주 좋은 장소다. 명함 한 장이면 더 이상 그가 누군지, 우리는 묻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배신과 모략의 쓴맛을 본 사람이라면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을 자유’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이해하리라.
나는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난다. 싸한 이메일 기운이 느껴지면 계약을 진행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고객도 만나고 싶은 고객만 만난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사업체의 대표 이사 자격으로 초대하면 아주 흔쾌히 반긴다.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내가 직접 채용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가끔 사회에서 동떨어진, 수도원에서나 나눌 법한 말들을 나누며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든다. 하지만 그 웃음은 가짜가 아니요, 우리 같이 예민하게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들만이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삼을 수 있는 심적 여유의 증거일 뿐이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창작자의 DNA를 갖고 있다. 그 안에서도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창작자들이 창작자를 위해 일하는 회사에 다니는 것은 무척 고무적이다. 나는 친구도 잘 만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하고만 가끔 술 한잔 기울일 뿐. 집에 가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 미용실에 가서 시간 낭비하기 싫어 머리도 혼자 자른다. 종종 가는 피트니스 트레이너도, 시골 오두막의 이웃도, 모두 만나고 싶을 때만 만난다. 나는 그 사실을 인지하기 위해 성찰을 멈추지 않고, 글을 쓰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
때로는 이메일이 너무 많아서 대응하기 버겁고, 세금을 납부하기 위해 답답한 정부 사이트에서 헤맨다. 회사가 내 마음처럼 돌아가지 않아 속상할 때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그건 본질이 아니다.
그럴 때면 나는 시골 길을 한참이나 걷는다. 그러면 마치 잠자리처럼 점점 하늘 위로 올라가는 내 마음 속 눈을 발견한다. 비포장 흙길은 점점 가느다랗게 변하고 수풀은 엄지 손가락 만해진다. 축적의 변화는 시간도 왜곡시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나와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저 산등성이 뒤에 월든 호수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그렇게 숲길 속에서 공상에 빠졌다가 돌아오면, 나는 다시 깨닫는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 감사하게도 그렇다. 좁쌀만한 불평에 집중하지 않고, 내 삶을 견인하는 깊숙한 본질에 대해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자 이제 답을 할 차례다.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무슨 일을 할 것인가?
모든 것이 완벽한 일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 그런 일은 환상이니까. 우선 자신이 하고 싶은 그 일이 도구가 되는, 그런 일을 해보는 건 어떤가. 그림이 좋다면 그림으로 일을 벌여라. 사람이 좋다면 교육이나 상담으로 일을 벌여라.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경영하는 경영자가 되어야만 한다.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른다 해도 그 사실에 집중하지 말자. 자신이 하고 싶다고 짐작되는 일 두세 가지를 정해놓고, 그 일부터 시도해보면 된다. 내가 사람들 속에서 북적거리지 않았다면, 그래서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더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오판했다면, 나는 더 먼 길을 방황했을 것이다. 내 길을 찾기 위해서는, 내 길이 아닌 곳을 가봐야 한다. 인생이 늘 그렇듯이, 잃어봐야 안다. 내 안에 숨겨진 고유한 그 지점이 얼마나 소중한지, 잃어볼 생각을 해야 한다. 혹시 하고 싶은 일보다는 편한 일을 찾고 있다면, 흐리멍텅한 고용주를 찾아 그 밑에서 인생의 주변길을 걷는 게 속 편하다.
나는 다시 숲길을 걷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오늘 너무 많은 이메일을 썼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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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은 고객만 만날 수 있다니 정말 높은 차원의 자유입니다.
네. 정말 그래요. 감사함을 잊지 않도록 이렇게 상기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지내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