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걱정

돈걱정을 주로 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돈을 걱정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돈이 없으면 돈이 왜 없는지 걱정을 한다. 돈이 있으면 왜 돈이 더 없는지 더 벌 수는 없는지 걱정한다. 돈이 많으면 왜 돈이 더 많을 수 없는지 누가 훔쳐가지는 않을지 걱정한다.

돈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은 돈이 없어도 돈이 있어도 크게 마음을 쓰지 않는다. 돈돈돈 하는 사람은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당신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이 당신을 조정하는 거니까.

그렇다고 돈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이 멋진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돈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은 왜 다른 사람이 나를 업신여기는지 걱정하고 더 많은 인기를 얻기 위해 걱정한다. 돈걱정도 하지 않고 인기를 걱정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사랑은 어디에 있을지 끊임없이 걱정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 왜 없을까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사랑이 진짜일지 걱정한다.

이것이 걱정과 고민의 본질이다. 우리 안의 걱정과 고민은 어떤 원인이 있어서 발생한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걱정과 고민이 원인이고 그 연료로 삼기 위해 만들어낸 것들이 돈, 명예, 사랑 따위다. 때로는 지루함이 걱정과 고민의 원인으로 위장되기도 한다. 걱정과 고민은 지루함마저 연료로 삼는다. 그것을 없앤 사람은 부처 정도다.

아내와 연애할 때 인라인스케이트 사은품으로 받은 이 양말은 아직 쌩쌩하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쌩쌩한 양말을 버렸는가.

나는 한때 사고 싶은 것을 다 사면서 살았다. 그리고 나서 곧 지루해졌다. 돈이 결코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음을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요새 내 걱정은 양말이다. 3년 전에 내가 한 말 때문이다. 앞으로 새옷은 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유튜브에서 공표했으므로 속이지 않고 지키고 싶다. 아주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나는 그 결심을 지키고 있는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내가 하는 걱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양말에 대한 걱정이 결코 가볍지 않다. 양말에 구멍이 나기 시작했고 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내 양말이 닳아서 너덜너덜해질 거다. 속옷이나 바지도 그렇다. 그렇다면 바지를 지어 입을 것인가, 아니면 남이 입던 옷들을 기부를 받아 입어야 하나, 이런 게 내 양말에 대한 걱정이다. 이 걱정은 꽤나 심각하다. 사는 것은 옵션이 아니다.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새로 시작한 사업 프로젝트는 돈을 벌어올 것인가. 다음 달 직원들 월급은 어떻게 줄 것인가. 고장났지만 모른 척 하고 있는 자동차는 괜찮은 걸까.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수는 왜 늘지 않는가. 내 다음 책을 쓸 시간이 부족한데 뭘 줄여야 하나. 늙어가는지 왜 이렇게 기력이 없나.

양말이 모두 해지면 뭘 신고 다니나.

이것들이 내게는 모두 같은 고민이다. 아무리 심각한 고민도 결국 양말에 대한 걱정과 동급이라니…

그 사실이 내게 위안을 준다.



11월 27일 일요일 아침 강원도 산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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