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닭 II – 공짜 자유는 없다

지난 주에 ‘싸움닭’이라는 글을 썼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주에도 나는 싸웠다.

이번 주 세 번의 싸움

첫 번째 상대는 다짜고짜 전화를 해서 화를 내는 한 고객이었다.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나니 우리가 잘못한 게 하나도 없었다. 설명을 해도 화가 이어졌다.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으시면 계약을 해지하자고 했다.

두 번째 상대는 미국에 있는 고객이었는데, 계약서에 써있는 절차를 무시했다. 자신이 새롭게 절차를 만들고 싶어했다. 여러 번 설명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일이 진행되지 않았으므로 계약을 해지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가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고객의 작업을 정성스레 하겠습니까? 존중할 줄 모르는 고객과는 함께일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 상대는 우리의 시안을 받아보고 실망에 찬 고객이었다. 뭐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방식이었다. 쌍소리만 안 했지 우리를 뭉개고 짓밟는 어휘가 가득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좀 더 어른스러운 태도로 우리를 존중한다면 최선을 다하겠다. 그러나 그럴 자신이 없거나 이 상황이 불쾌하면 전액 환불해줄 테니 다른 곳을 알아보시라.

계약을 해야 돈을 벌지

우리 회사는 크게 세 부분으로 수익을 얻는다. 첫째는 로열티다. 이른 바 패시브 인컴이다. 둘째는 광고대행비다. 셋째는 출판 사업무에 기획, 디자인, 제작, 유통을 의뢰하는 창작가들의 계약이다. 이 중 가장 큰 수익은 바로 셋째, 즉 계약이다.

회사 대표로써 가장 큰 수익을 확보하는 건 기본. 나는 계약에 상당한 시간을 쏟는다. 어떻게 하면 계약을 더 많이, 더 비싸게,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어려운 시장에서 회사가 이만큼 성장한 것은, 계약에 대한 내 고민이 꽤 유효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왜 자꾸 계약을 해지해?

반면 나는 안 좋은 계약을 해지하는 데에도 꽤 많은 노력을 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첫째, 계약을 해지 하는 이유는 주로 나쁜 언행과 나쁜 태도다. 작업의 결과물이 아니다. 불손하고 남을 비꼬는 언행은 수정이 불가하다. 소통 과정에서 우리에게 ‘나쁜’ 언행을 일삼는 사람은, 계약이 해지되지 않는 이상 끝까지 우리를 괴롭힌다. 그런 고객 한두 명이 있으면 회사 내에서 여러 사람이 상처를 입고, 한 번이면 될 일을 세네 번 하게 된다. 그러므로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인연을 끊는 것이 합리적이다.

아무래도 실무자가 직접 계약을 깨버리자고 말하기는 어렵다. 책임자가 손을 걷어 부치고, 진흙 구덩이에 손을 넣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둘째, 언행이 불량한 고객은 금쪽 같은 우리 회사 식구들의 사기를 저하시킨다. ‘내가 이런 사람이나 상대해야 하다니’는 곧 ‘내가 이런 일이나 한다니’로 이어진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긍정적인 사람이 있지만, 그런 건강한 생각마저도 균열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 바로 이런 ‘나쁜 고객’이다.

셋째, 언행이 비뚤어진 사람은 어디에 가나 비슷하게 행동한다. 상대를 업신여기고, 인격적으로 모독한다. 그런 모난 행동이 잘못됐다고, 세상에 한두 명쯤은 짚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원칙을 파괴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며, 상대를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가끔은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나는 길거리에서는 언제나 소시민이지만, 내 일에 관해서는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싶지 않다.

의외의 결과

이 글을 읽은 분이라면 싸움의 결과로 모든 계약을 해지했다고 예상할지도 모르겠다. 결과는 의외다.

내가 먼저 꺼낸 ‘계약 해지’ 카드에 대해, 위에서 말한 세 명은 모두 사과의 뜻을 전해왔다.

첫째 고객은 자신이 오해했다며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 고객은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며 앞으로 모든 절차를 철저하게 준수하겠다고 말했다. 세 번째 고객은 자신의 태도가 너무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며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말했다.

이런 결과에 대해 “역시 내가 이겼어”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사실 두 번째 고객은 오히려 계약을 해지하는 게 지금도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렇게 사과한 고객에겐 마음이 좀 풀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나면 내가 조금 더 미안해진다. 좀 참을 걸 그랬나 싶은 마음도 든다.

어쨌든 나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이 싸움은 상당히 의미 있기 때문이다.

싸움의 의미

싸움을 건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싸움을 걸지 않고 오히려 은근슬쩍 구렁이 담 타듯 넘어가도 그만이다. 직장 생활에서 내가 배운 것도 그것이다. ‘왜 일을 만들어, 그냥 쉽게 쉽게 가자구.’

그러나 나는 인생의 그 다음 단계를 개척 중이다. ‘쉽게 쉽게’, ‘대충 대충’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되었다.

소로우가 굳이 숲 속으로 들어가 자급자족을 꿈꾼 이유는 자신의 본질과 심연을 맞닥뜨리고 싶어서였다.

어디 소로우에 비교하겠냐마는, 나 역시 마음은 그렇다. 이건 내 일이고, 나는 이 일을 지금에 만족하지 않는다. 회사를 더 키울 것이고,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편하기 위해 모른 척하기보다는, 싸우더라도 하나씩, 제대로 “본질과 원칙”을 세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 개의 썩은 사과가 큰 컨테이너의 사과를 모두 곪게 한다.

정말이다. 나쁜 고객 한 명이 회사의 원칙과 사기를 무너뜨린다. 부정적인 직원 한 명이 나머지 선한 구성원들에게 회사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무기력감을 퍼뜨린다. 나쁜 문화 한 가지가 회사를 전체를 죽음의 골로 밀어낸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내 삶의 썩어 빠진 작은 습성이 인생을 전체를 구렁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싸움의 대가

한 편으로 이 싸움의 이면에는 꽤 철학적인 성과가 있다.

나쁜 고객 한 명이라도 내가 거절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사업을 내가 통제하고 있다는 증거다.

고객도 내가 선택하고, 고객과 일하는 방식도 내가 정한다. 자유의 대가가 “싸움”이라면 나는 앞으로도 기꺼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태한 나 자신과의 싸움이 먼저겠지.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2023.7.

“싸움닭 II – 공짜 자유는 없다”의 2개의 댓글

  1. 악성 고객들을 거절할 수 있는 자유를 얻기까지 또 많은 노력과 경험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하게 거절했는데도 상대방이 ‘아차’하면서 오히려 굽히고 들어온다다는 것은, 그만큼 마작가님이 쌓아오신 것들이 가치있기 때문이겠지요.
    왠지 오늘 글은 읽으면서 속이 시원했습니다.

    1. 프레소님 시도하고 계신 일 모두 계획 그 이상으로 잘 풀리고 계시길 기원합니다. 속이 시원하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이런 싸움의 과정은 분명 스트레스지만, 소모적이라기보단 건설적인 싸움인 것 같아 그렇게 위로하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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