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과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동료 작가, 아내를 포함해서 말이다.
연애 중인 사람이 나중에 가정에 충실할지 겉돌지를 미리 알 수 있을까?
20대 미혼 남성이 있다. 그가 결혼 후에 아이들의 좋은 아빠가 될지, 아이들이라면 진저리가 나서 피씨방으로 도망갈지 미리 판단할 수 있는 지표가 있을까?
내 결론은 “어렵다.” 그리고 나를 만나 15년째 세월을 보낸 내 아내도 그렇다.
아내는 말한다. 내가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때 내 모습을 되돌아보건데 아이들을 좋아하고 가정에 충실할지 아닐지는 판단하기 어려웠을 거라고 한다. 아직 끝을 알 수 없지만 15년 간 나는 전반적으로 가정에 충실했고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가슴 깊이 즐기고 때론 그리워한다.
결혼 전의 나를 되돌아 봐도 지금의 나를 예측할 수 있는 선행 지표는 딱히 없어 보인다. 나는 아이를 간절하게 원한 적이 없다. 아이들은 좀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했던 나를 기억한다. ‘아이들’은 나와 상관없는 전혀 다른 세계의 존재들이었다.

이 질문을 조금 다르게 바꿔 보면 좀 오싹하다.
행복하고 평화롭게 늙어갈 사람을 예측할 수 있는가?
자기만의 사업에 성공해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사람을 미리 판별할 수 있는가?
지금 하는 시도가 성공적일 거라는 선행지표는 무엇인가?
나 마작가의 홀로서기는 사업적으로, 작가의 커리어로써 어떻게 끝날 것인가?
여기에 대한 내 답은 이렇다. 이건 답이 아니라 의견에 가깝다. 20대 나 자신이 40대 지금의 좋은 아빠나 작가로써, 기업가로써 삶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것처럼.
책임감. 책임감은 할 일을 해내는 끈기다. 그러나 광의의 책임감이 어떤 모습을 하는지 안다면 ‘책임감’이라는 말이 주는 시시한 느낌과 사뭇 색다르다. 책임감의 다른 이름은 사명감이다. 사명감을 가진 사람은 인생의 의미를 깨달을 확률이 높다. 그 사명감을 통해 현실에서의 고통과 부조리를 이겨낼 힘을 얻는다. 내가 가정에 충실하고 나아가 내 삶을 흘러가는 대로 방치하지 않았던 큰 동력이 책임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책임감은 타고나는 게 아니다. 책임감은 가치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 책임감이 있다면,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좋은 신호다.
개선의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 그것을 방치하느냐 아니냐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양말에 구멍이 난 것은 그냥 신는다. 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수염이 좀 너저분해도 그냥 넘긴다. 그러나 내 시간이 허투루 낭비되거나, 잘못된 전략과 큰그림으로 헛수고를 한다거나, 다른 사람에 대한 약속을 지킬 수 없는 것이뻔하게 보이는데도 대충 무마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이 완벽하지 않듯이 나 역시도 헛점 투성이지만, 지금까지 한땀한땀 잘못된 것은 고치고, 틀어진 방향은 바로 잡으며 살아왔다고 자신한다. 대학 등록금을 혼자 벌어 겨우 졸업했지만 돈에 지지 않고 내 기준을 세우며 여기까지 왔다. 어떤 사람이 잘못된 것을 대충 넘기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개선하려는 노력을 지속한다면, 그것은 아주 좋은 신호다.
시도. 책임 있는 사람이 무엇인가를 개선하려 한다면, 그것은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가. 필연적으로 행동이 따라온다. 3달 전이나, 1년 전이나, 3년 전이나, 그리고 10년 전이나, 어떠한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고 그 자리에 맴도는 사람은 사실은 퇴화하는 중이다. 그는 자신이 책임감 있고 개선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떤 식으로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10년 간 한 회사를 다니는 게 잘못은 아니다. 10년 간 아무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누구도 그에게 묵묵하게 일한 것을 탓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심판의 날이 존재한다면, 그는 스스로를 증명해야 할 것이다. 첫 번째 심판은 은퇴 후 허탈함이 될 것이다. 회사 말고는 남은 게 없어 ‘이렇게 살지 말걸’하고 후배들한테 말해봤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텐데 말이다. 두 번째 심판은 노쇄하여 인생을 정리할 때가 될 것이다. 되돌아보건데 이 값진 시간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남이 바라는 대로 살았다는 깊은 절망감이 관절염처럼 온 몸을 떨게 할 것이다. 그러나 행복하자. 우리는 다시 지금으로 돌아왔다. 자, 그럼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미래의 내 죽음 앞에 부검을 했다면, 지금의 내 삶에서 변화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책임감을 갖고, 작은 것부터 개선하자. 그것은 시도에서 나온다. 매번 성공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성공할 것이다. 그런 점들이 모여 인생을 의미있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내 지친 영혼을 달래고, 삐뚠 생각을 개선하려고, 책임감 있게 글 한 편을 쓴다. 희망도 절망도 없이.
202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