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의 미학

나를 재촉하지 마라. 혼자만의 시간이 나를 바꾼다.

바쁜 일상은 정말 중요한 질문들을 하찮게 만든다. 때로는 질문 자체를 숨겨버린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들이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내가 타고난 기질은 무엇일까.”
“그 길로 나는 가고 있는가.”

그 질문을 꺼내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하다. 여유가 필요하다. 누구도 나를 재촉하지 않고, 나도 나를 재촉하지 않는 시간. 그곳에 나를 놓아야 한다. 나를 데려다 놓을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본질을 가르쳐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하필이면 숲으로 들어갔다. 삶을 깊이 있게 살기 위해서. 법정 스님도 아무것도 가지지 않겠다며 들어간 곳이 숲속 오두막이다. 그렇게 자신을 산으로, 고독으로 데려다 놓았다.

혼자 있는 시간은 숲과 닮았다. 처음에는 적막하다고 느낄지 모른다. 처음 만난 사람처럼 나 자신이 어색하기까지 하다. 괜찮다. 처음이라 그렇다. 외부의 소음이 멈출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먼지가 가라앉을 때까지 참아야 한다. 그러면 내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애써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여유와 고독이 쌓이면 누구든 자신에게 이렇게 묻고 있을 것이다.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는가”
“무엇이 나다운 삶인가”

누구나 쉽게 그 답을 얻지는 못한다. 그러나 질문하지 않으면 절대 답을 가질 수 없다.

멈출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익숙한 반복에서 벗어나야 잃어버린 나를 다시 만날 수 있다. 멈춤은 두렵다. 그러나 잠깐이다.

일단 멈추면, 삶은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때로는 떠나야 할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마저 두려움을 외면한다면, 삶은 모욕을 줄 것이다. 떠나고 나면 그제야 알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낡은 틀이었으리라.

떠남에는 미학이 있다. 퇴사라는 떠남 뒤에도 아름다움이 있다. 퇴사의 미학이다.

나를 찾아서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이해받지 못한다. 누구도 그들을 수행자라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방황하며 떠나는 구도자들은 그저 자신의 여정을 퇴사라는 거친 언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사람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퇴사는 단순히 불만이 가득찬 세속적인 곳을 떠나는 행위가 아니다. 낡은 틀을 넘어서야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그것은 자신만의 삶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혼자만의 시간은 고요하게 시작해서 강렬하게 끝난다.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별 볼 일 없던 한 사람의 인생이 빛을 내며 주변을 밝힌다. 그런 순간이 있다. 떠날 줄 아는 사람이 그런 빛을 만든다.

#퇴사미학

댓글로 소통해요

맨위로 스크롤

I Love MaLife 마작가의 다이어리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