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어 실력

중학교 2학년이 된 딸 아이가 영어에 대해 고민이 많다.

덕분에 잊었던 기억을 몇 가지 떠올릴 수 있었는데, 잊기 전에 남기려 한다.

영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아니었지만, 영어는 내 인생에 상당히 영향을 끼쳤다.

사연은 나중에 보충하기로 하고 몇 가지 자랑거리만 늘어놓자.

  • 내가 a,b,c,d를 배운 게 중학교 때다. 우리는 중학교부터 영어를 배웠다.
  • 고1 때 강원도 영어 경시대회에서 1등을 했다.
    • 대회에 일부러 참여한 건 아니고, 당시 내가 다니던 한 명문 고등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참여한 것 같다. 뭔지도 모르고 시험을 봤는데, 선생님이 “마형민이 강원도에서 1등이다”라고 말해줬다.
    • 영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건, 비평준화였던 강릉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던 중3부터다. 강릉고는 내 동기 330명 중 100명이 서울대를 갔을 정도로 명문이었다. 그 놈들을 제치고 내가 강원도에서 1등을 했다니. 애들은 내가 공부를 엄청 잘 하는 줄 았았을 거다.
    • 영어에 관심이 없었다. 중 2까지 나는 공업고등학교에 가서 자동차 정비를 배워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다른 한 켠에는 문학가에 대한 꿈이 있었다. 요즘 이십대 중반에 읽는 헤르만 헤세, 헤밍웨이, 앙드레 지드를 난 중2 때 다 찾아 읽었다.
    • 중3부터 고1, 이 2년간 당시 “수학의 정석”에 이어 양대 산맥으로 알려진 “성문 기본 영어”를 7번인가 8번 뗐다. 페이지마다 ‘내가 몇 번째 보는 것인지’ 표시를 해둬서 나중엔 책이 너덜너덜, 종이가 헤졌다. 대부분의 페이지는 이 문장 다음에 뭐가 나올지 알았다. ‘이 페이지 다음엔 종이에 얼룩이 져있겠구나’를 알 정도였다. 좋아하는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면 그 다음 노래를 외우는 것처럼. 그외엔 영어책을 보지 않았다.
  • 수능에서 영어를 다 맞았다.
  • 대학에 오니 토익 붐이 불었는데, 나는 문제집을 한 권도 풀지 않았다. 시험도 보지 않았다. 그건 다 가짜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사랑의 블랙홀” (The groundhog days) 대사를 구해서, 그걸 다 외웠다. 좋아서 한 일이다.
  • 입사한 회사에서 영어 1등을 했다.
    • 테스트는 필기와 말하기(대화)였다. 내가 마케팅으로 간 지 2년 차였다. 대화 평가자는 서양인이었는데, 나랑 대화하더니 조금 놀랐다. 다른 평가자들과 차이가 났던 것 같다.
    • 그 회사는 동서식품이다. 나는 동서식품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지점의 영업직으로 발령받았다가, 나중엔 본사의 마케팅으로 스카우트됐다. 동서식품은 지금도 내가 사랑하는 회사다. 브랜드도, 제품도 사랑하고, 조직문화도 그립다. 어느 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전체 영어 테스트를 시행했다. 본사 대상이었다.동서식품은 조금 보수적인 인사정책 때문에, 본사에서 일하는 직원은 50% 이상이 SKY이고, 90% 이상은 서울에 있는 이름 있는 대학을 나왔다. 거기에 속하지 않은 10%는 진짜 일잘하는 분들이다. 거기서 내가 1등을 했다니 조금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그 사실 때문에 나는 이직을 결심했다. 조금 더 성장하고 싶었다. 조금 더 큰 물에서 놀고 싶었다.
  • 이직 과정에서도 영어를 인정받았다.
    • 세 번째 회사였나, 이직하려는 회사는 존슨 앤드 존슨이었다. 잘 알려진 미국 기업인데, 여기는 영어 테스트를 종로에 있는 유명 학원에 의뢰했다. 나는 해당 학원에 가서 테스트를 봤는데, 평가자가 “10분 안에 끝내라고 했는데 너랑 30분 넘게 얘기했다”며 “너는 완벽하다. 무조건 합격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나서 본사에 가서 인사 담당자 그리고 마케팅 임원과 면접을 했는데, 원래 영어로 계획되어 있는 질문에 대해 “영어는 잘 한다고 하시니 넘어갈게요”라고 말했다. 내가 보기엔 그들이 영어에 자신이 없었다. 존슨 앤드 존슨은 최종 합격까지 했는데, 전 회사 사장의 개입으로 입사는 무산되었다.
  • “너처럼 영어 잘 하는 동양인은 처음 본다”
    • 실제 들었던 말이다. 그와 함께 들었던 인상적인 말로는 “내가 만난 동양인 중에 네가 가장 외향적이다”다. 나는 내향인이다. 그런데 외향적이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그 역할을 매우 잘, 아니 기대 이상으로 잘 이행한다. 그 사실이 지쳐서 나는 외향인으로써의 삶을 마감하고, 내가 주인공인 삶을 찾아 떠났다. 그 내용은 내 책 ‘방황하는 사람은 특별하다’에 잘 나와있다.

나는 단 한 번도 영어 학원을 다닌 적이 없다. 그러나 지금도 영어로 된 토론은 부담 없이 나설 수 있다. 마지막 직장인 시절에 내 보스는 외국인이었고, 내 팀원은 4개의 국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조금 중요하다 싶은 회사는 영어였다. 유학 간 적이 없고, 과외를 받은 적도 없다. 나는 강원도 출신이다. 대학 때문에 서울로 왔다. 그런데도 영어를 잘했고, 그 덕분에 분수가 넘는 대우도 받았다.

그 때는 몰랐는데 이제야 알겠다. 언어에 대한 내 남다른 감수성일 수도 있고, 메타 인지와 가치관 때문일 수도 있다. (난 어렸을 때부터 늘 한국은 아주 일부이고, 더 큰 세계가 흥미롭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깨달음은 더 정리해서 보충하려고 한다.
– 나는 영어가 필요 없는 사람이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은 진정한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일단은 우리 딸에게 자랑이라도 되라고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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