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괴로움을 즐깁니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토요일은 나의 안식일이다. 생계는 의도적으로 잊는다. 생계에 대한 고민도 잊는다.

방에 틀어박혀 글을 쓴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쇼팽을 듣는다.

팝이 그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면 클래식은 그 무엇도 떠올리게 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클래식은 순수하다. 쇼팽이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는 중이라고 가정한다면 그건 아침 숲, 한낮의 고요한 저수지 그리고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 앉아 키낮은 식물들을 관찰하는 나 자신에 대한 심상 정도다.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쓰지만, 글을 쓰고 싶기 때문에 쓴다. 되는 대로 쓰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나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이다.

내가 썼던 책을 찾아본다.
옛 메모를 뒤적인다.
내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이는 훌륭한 옛 철학자들이 다가 아니다. 과거의 나 자신이다. 기록 안에서 존재하는 내 영혼의 원형이 내게 아주 직접적인 영감을 준다. 쇼팽이 나를 이끄는 곳은 내 기록이 남아 있는 어딘가처럼 느껴진다.

나는 왜 자꾸 퇴사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이런 글을 썼다. 철학적인 문제를 다루지만 결코 현실과 멀어질 수 없는 그런 주제다. 잘 쓰기가 어려운 글이다.

자료를 찾고 생각을 정리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토요일 아침에 쇼팽을 들으며 방구석에서 글을 쓴다. 당장 돈벌이도 되지 않는 주제에 대해서 쓴다. 대충 쓰기 싫어서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하기 위해서 타이핑을 멈추다가, 생각에 가속도가 붙으면 라흐마니노프처럼 키보드를 리듬감 있게 두드린다. 이 리듬이 빨라지면 실제로 내가 피아노를 치는 건지 글을 쓰는 건지, 이 글을 내가 쓰는 건지 아니면 누가 시키는 건지 알 수 없는 몰입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가 몰입의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비로소 나를 인식한다.

아, 나는 이 일을 사랑한다.

누구도 보상해주지 않는 이 고통의 과정을 나는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2023.7


2010년부터 쌓인 미출판 원고들

소설이 많다. 분량으로 치면 100만 단어가 넘는다 / A4 용지로 치면 약 3,500장. 네까짓게 무슨 작가냐고 말해도 나는 꿈쩍하지 않는다. 이 원고들이 “뭔가가 된 상태로써의 작가”가 아닌 “뭔가를 쓰는 사람이 작가”라는 내 철학을 증거하기 때문이다.

창작 고통이야 말로 내가 정말로 독특하고도 의미 있는 것을 만들고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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