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을 좋아한다. 쓰는 걸 좋아하고, 남이 쓴 것 – 기록을 좋아한다.
언제나 그랬다. 그런데 그걸로 밥벌이 할 생각은 못했다. 뒤늦게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은 곧 “내가 글로 평생 업을 삼아야겠다”는 발견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실제 그렇게 사는 천재들의 행복한 푸념이다. 그걸 고지곧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좋아하는 일은 어느 지점엔 사명으로 변한다. 특히 인간에게 새겨진 죽음의 DNA 나이 38세가 지나면 더욱 그렇다. 인생의 쓴맛 앞에서 많지 않은 시간의 압박까지… 자신의 인생에서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행히 아래와 같은 진실도 깨닫게 되리라.
좋아하는 일이란 늘 행복한 일이 아니다. 힘든 것까지 특별하게 수용하는 일이야 말로 진짜 좋아하는 일을 ‘단순히 먹고 노는 환상 속 좋아하는 일‘과 구분해주는 지표다. 좋아하는 일로 밥벌이를 하는 순간부터 시간의 마법이 작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일은 내 인생의 업이 되고 사명이 된다.
‘좋아하는 일’에 대한 이런 제대로 된 번역이 없으면, 왜곡된 인생 속에서 “왜 나만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하는 건지” 불행의 만트라를 매순간 읊으며 사는 셈이다. 이 세상에 진정 매순간 좋은 일이란 없다. 김연아가 죽을 만큼 고된 훈련을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그 괴로움마저 포용할 때만이 그녀는 ‘나는 피겨를 좋아한다’가 아닌 ‘피겨가 내 인생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지금 나는 글로 밥벌이를 한다. 첫째로 다섯 권의 책을 낸 덕에 인세가 매월 나온다.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둘째로 책을 만들고 유통하고 마케팅하는 서비스로 주식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작가들을 상대로 만족할 만한 책을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마케팅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자질구레한 일들은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일의 범주에 속한다. 특별할 것 없는 원고를 더 가치있게 만드는 고되고 지루한 편집 작업도 여간하지 않다.
그러나 나는 그 일을 싫어한다고 말할 수 없다. 모순적이게도 그 반대다.
나는 그 일을 사랑한다. 그건 마치 밤새 보채는 아기를 미워하면서도 더 깊이 사랑하는 산모의 마음이다.
나는 글쟁이가 되고 싶다. 아니 이제 되었다. 돈벌이를 글로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특별함을 느끼게 한다. 세상에, 내가 글을 만지고 작가를 상대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니. 더 이상 어떤 특별한 것으로 내가 나다움을 매순간 확인하며 경제활동을 할 수 있을까.

글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세상에 나 하나뿐이랴.
회사 동료를 구할 때에는 창작가의 DNA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보는 이유다. 글쓰기 자체를, 남이 쓴 글을, 세상의 책을, 그것을 창조한 작가를 아주 특별하게 여기는 사람을 평생 동료로 삼고 곁에 두고 싶다.
김연아가 훈련을 지겹다고 하지 않듯이, 이 모든 지난한 창작의 순간을 권태롭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허벅지가 터질 듯한 고통까지 김연아가 사랑하고 받아들이듯이, 반복되는 기획과 편집에서 “세상에 내가 사랑하는 글을 매일 마주할 수 있다니”라고 순간의 경이로움을 주변에 뿜어낼 수 있는 사람 – 물론 이런 순간은 매순간이 아니라 아주 문득인 것이 흠일지라도.
지금 본인의 자리에서 그런 특별함을 느낄 수 없다면,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짐을 꾸리고 기쁜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야 한다.
떠나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든다면 그건 당신의 자리가 아니다.
“이런 지겨운 일이라니, 내가 여기서 인생을 허비하는 게 아닐까”, “이건 내가 원하던 게 아닌데 뭔가 더 가치있는 건 없을까”라고 느낀다면 떠나야 한다.
자신이 특별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그곳을 찾아서 떠나야 한다.
그 특별함을 방패 삼아 괴로움과 권태까지 내 사명으로 품을 때에, 시간은 그를 거장의 대열에 합류시키리라. 모든 인류의 스승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글을 보고 "글이야 말로 내 특별함의 원천이다"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진지한 마음으로 내게 레쥬메를 보내주셔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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