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들은 나에 대한 평가
요즘 내 주변 사람들한테 들은 이야기 중 남기고 싶은 것들이다. 1. 운동 신경이 뭐, 아유, 좋습니다. 트레이너에게 케틀벨 스내치를 배우다가 들은 말이다. 내 인생에서 운동에 얽힌 특별한 기억은 없다. 그래서 이 말이 기분 좋게 기억된 것 같다. 이 말과 함께 고구마 줄기처럼 얽혀 나올 기억들도 함께 적어 본다. 초등학교까지는 나는 단거리 계주 선수였다. 그래봤자 운동회 […]
요즘 내 주변 사람들한테 들은 이야기 중 남기고 싶은 것들이다. 1. 운동 신경이 뭐, 아유, 좋습니다. 트레이너에게 케틀벨 스내치를 배우다가 들은 말이다. 내 인생에서 운동에 얽힌 특별한 기억은 없다. 그래서 이 말이 기분 좋게 기억된 것 같다. 이 말과 함께 고구마 줄기처럼 얽혀 나올 기억들도 함께 적어 본다. 초등학교까지는 나는 단거리 계주 선수였다. 그래봤자 운동회 […]
아래 보고서는, 내 블로그 글 약 300여 편과 자료를 분석하여 200달러짜리 챗GPT o1 pro가 작성한 마작가에 대한 종합자료다. 누구든 인공지능으로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길이 열렸다. 자료가 있다면 그렇다. 나 자신을 기록으로 남긴 사람은 한 차원 더 높은 자기발견을 경험할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에 대한 기록이 없는 사람에겐 그 분석의 깊이가 얕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그를
2025년이 시작되었다. 내가 원하는 2025년은 분명하다. 책을 내고, 더 튼튼한 몸을 만들고, 유튜브와 강연을 이어가고 싶다. (“내가 원하는 2025년”) 걱정된다. 내가 이 계획을 나몰라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작 열흘이 지났을 뿐인데… 고작 열흘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제러너스하게 말하면 그렇다. 고작 열흘이 지났는데, 의도대로 그 열흘도 만들지 못했다. 열흘은 일 년을 가늠하는 잣대다.
고작 열흘 – 2025년 2주차 기록과 성찰 더 읽기 »
창작가로써 2024년 작가 노릇 2024년엔 창작자 역할을 잘 못했다. 자랑스러운 창작물을 거의 내놓지 못했다. 그나마 블로그에 34개의 글을 썼다. 1.5주에 하나씩이므로 아예 손을 놓지는 않았다. 주말이면 도심과 일에서 벗어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강원도 숲속은 내 오랜 리추얼 중 하나다. 2023년에는 151개의 글을 썼다. 반의 반이다. 유튜브에는 24개의 영상을 올렸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기엔 부족했다.나는 창작과 독서가 전혀
사업의 본질 끊임 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기업은 본질을 잊지 않는다. 본질에 대한 이해가 튼튼하다면 트렌드가 바뀌어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코닥이 자신의 본질을 사진 예술로 규정했다면 필름에서 디지털로 전환되었던 트렌드에도 살아남았을 것이다. 미국의 대형서점 보더스도 온라인 서점과 전자책 트렌드를 간과해서 파산을 신청했다. 자신들의 사업에 대한 본질을 너무 좁게 규정했다. 그들의 본질은 책방이 아니라, 책이라는
요즘 내 고민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작가로써 내 정체성에 대한 것. 다른 하나는 사업가로써 어떻게 이 사업을 더 훌륭하게 만들 것인가. 그중 사업에 대한 고민은 주로 책과 챗GPT를 통해 생각을 발전시키고 있다. 책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처럼 이론적인 것부터, <일론 머스크> 같은 자서전까지 다양하다. 좋은 책을 발견하면, 그 안에서 언급한 다른 책을
신경쓴다는 건 때론 좋은 일이다. 고지서에 대해, 대출 금리에 대해, 답변을 기다리는 까다로운 고객에 대해 신경 쓰는 것 말고. 이번 달 회사 운영을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다가도 자꾸만 들여다 보게 되는 것, 그리고 마음이 벅차오르는 것. 나는 요새 화분에 신경을 쓴다. “너 때문에 내가 산다.”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하는 이
올 2월, 사무실을 이사했다. 그러면서 내 성격을 다시 발견했다. 실제로 사무실을 이사할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언젠간 이사를 해야지’라는 생각 정도였다. 그러다가 임대 공고를 보게 되고, 즉시 전화를 걸어 방문을 했다. 그리고 나서 만 3일. 실제 사무실 계약을 하고 이사를 해서 3일째 되는 날, 동료들이 새 사무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방문, 조건 협상, 법적 계약, 자금 처리,
어떻게 하면 ‘하루를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해왔다. 내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운동, 공부, 쓰기, 가족 같은 항목에 가중치를 두고 밤마다 점수를 매겨서 기록했다. 수십 가지의 체크리스트를 만들기도 했고, 일어나서 몇 시 몇 분 지하철을 타는지, 15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그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다 부질 없었다.
첫 번째 살림 특별할 것 없는 신도시에 내 첫 번째 살림이 있다. 중소형 아파트에, 사랑하는 아내와, 중학생 딸, 초딩 아들과 산다. 아파트가 주는 무개성의 편안함이란… 여기엔 ‘내가 만든 가정’이라는 사명감과 의미 그리고 숭고함이 있다. 두 번째 살림 번아웃과 삶의 ‘의미 없음’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때 나를 구한 건 자연이었다. 숲이 주는 새로움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이런 저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