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앞둔 분들께 꼭 하는 조언이 있다. 하고 싶은 일을 서너 가지 정해놓으라는 거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가정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간 낭비를 막을 수 있다. 내게도 몇 가지 가정이 있었다. 그 가정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퇴사 후 내가 했던 일을 적어본다.
책을 쓰기 시작했다. 자기계발서로 포지셔닝하면 강의를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어렴풋이 생각했다. 외국회사에서 쌓은 전략과 브랜드에 대한 경험이 내가 내세울 수 있는 전부였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새로 개설했다. 블로그가 모든 콘텐츠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유튜브를 새로 개설했다. 충동적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상을 편집했다. 당연히 아무것도 몰랐다. 유튜브를 보고 파이널컷 프로와 포토샵을 배웠다. 여기에 시간을 상당히 썼다.
이렇게 6개월을 썼다. 성과는 거의 없었다. 돈은 한 푼도 못 벌었다. 애초에 단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전략의 실패였다.
그러다가 금전 사기를 당했다. 아주 가까운 지인이었기 때문에 사전에 눈치를 채지 못했다. 당장 생활비가 바닥날 판이었다.
중국집 배달을 알아봤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답이 안 나왔다. 내가 요식업을 할 것도 아니기 때문에 소모적이었다. 하나를 하더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찾기로 했다.
쇼핑몰을 차렸다. 초기 비용이 들지 않는 위탁판매 시스템을 공부했다. 유튜브와 각종 사이트로 독학했고 마음 먹은 지 열흘 만에 사이트를 오픈했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로 시작해서 나중엔 11번가, 쿠팡에 입점했다.
돈이 벌리는 게 보였으므로 아내도 나를 따라 창업했다.
쇼핑몰 창업 소식에 유튜브 구독자들이 열광했다. 전자책을 간단하게 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집필 중이었던 책을 잠시 미루고 위탁판매에 대한 전자책을 썼다. 3주 만에 책이 나왔다. 당시엔 블로그에서 전자책을 파는 게 유행이었는데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러기 싫었다. 서점과 직접 계약을 해서 전자책을 등록했다. 책은 잘 팔렸다. 아주 잘 팔렸다. 그래봤자 한 달에 오십에서 백만 원이었다.
위탁판매 책이 잘 팔리자 그 콘텐츠를 따라 구독자가 몰려 들었다. 유튜브에서 나는 쇼핑몰 이야기보다는 주로 ‘나다운 삶’의 철학과 일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 이야기에 공감하는 구독자가 계속 쌓여갔다. 유튜브 구독자 천 명이 넘어가면서 광고 수익이 생기기 시작했다.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준비하던 책을 완성했다. ‘내 젊은 날에 보내는 비밀 레시피’다. 책은 잘 팔리지 않았지만 마작가라는 브랜드의 포지셔닝을 더 분명하게 만들어주었다.
유튜브 구독자와 블로그 이웃을 대상으로 책쓰기 강의를 시작했다. 책 쓰는 기술보다는. 인생에서 ‘나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스토리로 풀어내는 워크샵에 가까웠다. 강의료는 60만 원이었고 한 기수는 여섯 명이었다. 그렇게 다섯 기수 정도를 진행했다.
수강생이 책을 완성하면 그 책이 유통까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점들과 계약을 확대했고 등록을 대신 해주었다.
책쓰기를 하다 보니 강의 자료가 쌓였다. 그 내용으로 세 번째 책 ‘팔리는 콘텐츠의 한 가지 이유’를 썼다. 이미 있는 내용이므로 약 5주 만에 책이 출판되었다.
책과 관련한 일은 하면 할수록 무척 흥미로웠다. 용돈 벌이는 된다는 생각으로 다른 일을 벌였다. 크몽이라는 재능 사이트에서 전자책 제작 대행을 시작했다. PDF를 만들어주는 것으로는 차별점이 없어서 ePub 전자책 제작 대행을 시작했다. ePub은 혼자서 배웠다.
전자책 제작 대행은 생각보다 돈이 됐다. 팔을 걷어 붙이고 프리랜서의 삶을 살아 보기로 했다. 그래서 전자책 제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몇 추가했다. 그중 하나는 출판 유통 대행이었다. 전자책을 만들어주고 그걸 서점에 유통했다. 당시에 그런 서비스가 당연히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게는 큰 구멍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 구멍을 내가 직접 채워보자는 생각이었다.
전자책에 대한 의뢰가 많아져서 쇼핑몰을 정리했다.
유튜브 구독자가 늘어나면서 커리어 코칭, 자아 발견에 대한 개인 컨설팅을 시작했다. 60만 원에서 80만 원을 받았다.
컨설팅 영업을 위해 내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유튜브 구독자들 중에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홈페이지 만드는 법은 유튜브에서 보고 배웠다.
구독자들을 모아 인문학 공부방을 만들었다. 일주일 동안 책이나 인물을 정해 각자 공부한 내용을 블로그에 올리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영상 통화로 미팅을 했다. 그렇게 1년을 진행했다. 약 40여 명이 드나들었다. 돈은 한 푼도 벌지 못했다.
크몽 사이트에서 본격적으로 프리랜서로 확장을 시작했다. 광고 디자인을 서비스했다. 포토샵과 캔바로 디자인했다. 나는 한번도 디자인을 공부한 적이 없다.
크몽에서 기사를 쓰고 신문에 배포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기사는 글쓰기 실력으로 때웠다. 배포는 직접 전화해서 배포처를 찾아냈다. 가운데에서 돈을 받고 기사를 배포해주는 서비스가 꽤 많았다. 나는 기사를 쓰고 배포하는 조건으로 30-50만 원을 받았는데, 실제로 기사를 배포하는 데에 들어가는 돈은 10만 원 정도였다. 사회 생활의 인맥은 전혀 활용하지 않았다.
크몽에서 한 달에 천만 원을 넘게 벌기 시작했다. 대신 하루 종일 일해야 했다. 틈틈이 유튜브, 블로그, 개인 컨설팅과 강의도 병행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니 몸이 상할 것 같았다.
법인을 세웠다. 크몽의 한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료를 뽑아서 일을 체계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어서 나 스스로도 놀랐다. 내가 기업의 설립자, CEO가 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 회사 홈페이지를 만들고 광고를 디자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완성도가 처참했다. 구글로 광고를 진행했다. 유튜브 영상과 관련 블로그를 보고 따라했다.
개인적으로는 유튜브 구독자들을 모아 토크쇼 같은 행사도 진행했다. 뉴스레터도 시작했다. 퍼스널 브랜드인 ‘마작가’ 를 기업 홍보에 쓰고 싶지 않았다.
법인의 주요 서비스는 퍼스널 브랜드와 출판 컨설팅 그리고 디자인 대행과 유통이었다. 나중에는 마케팅이 강화되었다.
유명 전자 제품 기업의 사보용 기사를 기획해서 대신 써주기도 했다. 당연히 글쓰기 실력으로 때웠다.
기업 홈페이지의 카피라이팅을 제안하기도 했다.
서비스는 타깃이 분명했다.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은 사람이 출판이라는 플랫폼을 통해서 제2의 인생을 사는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나의 패키지로 압축시켰다.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개인 컨설팅을 통해 책의 방향을 제안했다. 책의 표지와 홍보 자료를 디자인했다. 책이 완성되면 서점에 등록시키고 각종 보도자료와 개인 홈페이지로 마케팅까지 서포트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통 서점은 늘어났고, 디자이너를 포함한 전문가도 채용했다. 그 무엇보다, 진심 어린 카피라이팅으로 홈페이지 소통을 계속했다.
음반 사업도 시작했다. 스튜디오를 뚫어서 편곡과 녹음 그리고 음반 유통을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클라스도 개설했다. 휴대폰으로 대충 찍고 올렸다.
DIY 플랫폼 서비스는 론칭 6개월 만에 고정비용 없이 매출 5천만 원을 달성했다.
지금 우리 법인은 구글로부터 받는 광고비 세금계산서만 해도 한 달에 1,0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4대 보험 근로자는 두 자릿수다. 20평대 사무실이 하나, 40평대 사무실이 하나다.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법인이 설립되고 나서 부터는 많은 서비스를 통합하고 신규로 런칭하고 있다. 다음에는 DIY 플랫폼을 기반으로 앱을 런칭할 계획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들을 단순히 돈을 위해서 하지 않는다. 주말이면 유튜브를 찍고 다음 책을 쓴다. 나처럼 사는 사람도 있다. 자랑도 아니고 강요도 아니다. 전형적인 직장인이었던 한 사람이 이런 삶을 살 수도 있다. 나는 그걸 보여주고 싶다.
나의 이런 이야기를 듣고 강연을 부탁하기도 한다. 유명하지 않은 어떤 잡지와 인터뷰를 했다. 유튜브 구독자들에게서 팬레터도 종종 받는다.
누군가는 여기서 어떤 패턴이나 교훈을 찾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퇴사 후 시도한 것들을 이렇게 적은 이유는 하나다.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보라. 적지 않은 사건들은 또 얼마나 많았겠는가. 퇴사 당시 내 계획에는 대부분 없던 일이다. 내가 계획하지 않은 많은 일들이 앞으로도 벌어질 게 뻔하다.
일단 문을 열어라. 그래야 보인다.
#퇴사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