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하루

어떻게 하면 ‘하루를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해왔다. 내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운동, 공부, 쓰기, 가족 같은 항목에 가중치를 두고 밤마다 점수를 매겨서 기록했다. 수십 가지의 체크리스트를 만들기도 했고, 일어나서 몇 시 몇 분 지하철을 타는지, 15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그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다 부질 없었다. 인간의 뇌는 그런 식으로 작동할 수 없다. 10년이 넘은 메모를 보면 온갖 계획들이 저마다 ‘멋진 하루’를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 질문을 적어 내려가던 10년 전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큰 결심을 하지 않으면 흐지부지, 10년이고 20년이고 그렇게 살게 되는 게 인생이다. (심지어 메모에는 이런 말까지 똑같이 적혀있다.)

관련 글 ‘2011년에 적었던 내 계획들에 대해’

관련 글 ‘나의 주간 계획’ 2023년 49주차

30대엔 내 하루를 온전히 내가 통제할 수 없었다.

남의 결정에 의해 휘둘리는 시기였다. 관리자가 되고 나서 상당한 자유를 얻었다. 근무시간도 거의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었다. 사무실에 앉아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회사는 내게 임시적인 곳이었고, 그런 상태에서 긴 호흡의 자유를 설계하기란 내게 불가능해보였다. 

마흔에 독립을 선언했다.

그제서야 온전한 내 시간이 생겼다. 직장인 마팀장을 걷어내자, 상당히 넓은 공간이 생겼다. 비로소 내겐 세 개의 정체성이 필요하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깨닫게 되었다. 첫째는 창작가로서 마작가라는 정체성이다. 내겐 그런 DNA가 있다. 창작이라는 숲에서 숨을 쉬어야 사는 것 같은 피가 흐른다. 둘째는 사업가로서 마대표라는 정체성이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그걸로 소비자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0에서 나만의 비전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셋째는 자연인으로서 가족으로서 마형민이다. 남편으로, 아빠로, 아들로. 존재의 근원을 공유하는 원초적인 단위다. 또 인간이라는 유한한 몸뚱아리로 살아내야 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의 인생 분투기이도 하다.

이제 조금 더 분명하다. 

하루를 잘 보낸다는 건, 이 세 가지 정체성을 얼마나 잘 수행했느냐다. 나는 그러면 또 자신에게 묻는다. 쓸데없는 데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꼭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어떤 일을 해내야 나는 이 세 가지 정체성을 잘 살아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삶에서 균형이 무너질 때마다 양심이 발동해서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하는 것 같다.) 

오늘의 나는 이런 하루를 살라고 말한다.

글을 쓰는 하루. 바쁜 하루에서 시간을 낼 결심을 하고, 그 순간에 몰입해서 글이라고 부를 만한 뭔가를 생산해냈다면. 

운동하는 하루. 마음의 근육을 키우듯이 내 초라한 몸뚱아리의 근육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땀흘리고 숨을 쉬는 나 자신에 몰입할 수 있었다면. 

사업의 초석을 놓는 하루. 당장의 일이 쳐내는 게 아니라 먼 훗날 디딤돌이었노라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실행했다면.

정을 나누는 하루. 주변 사람과 마음 따뜻한 추억, 둘만의 속삭임, 어려움을 함께 돌파하는 동료애 – 그렇게 먼 훗날 돌이켜 보면 다시 회귀하고 싶을 만한 순간을 만들어냈다면. 

내게 주어진 공동체의 업무를 책임감 있게 완수하는 것은 기본.

내 삶의 단계에서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한 과제다. 그런 하루가 모이면 나는 인생을 꽤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누가 그 다음을 묻는다면 유튜브 영상이 될 것이다. 글을 쓰고, 운동을 하고, 사업의 씨를 뿌리고 난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 ‘그래, 오늘 하루 잘 살았다’라며 곤히 잠이 들 수도 있지만,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고 영상을 하나 더 편집하고 싶다. 

말이 쉽지, 매일 이걸 해내긴 어렵다. 그러면 난 또 그날의 하루에 대해 쓰겠지. 그리고 이런 하루가 모이면 인생이 된다고, 또 한 줄 적었으리라.

댓글로 소통해요

Scroll to Top

Discover more from I Love MaLife 마작가의 다이어리

Subscribe now to keep reading and get access to the full archive.

Continue re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