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이사 명함이라는 것

오늘 동료와 이야기하다가 나온 주제다.
“대표/CEO 명함이 생기면 정말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어떠세요?”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이다.

기억해 보니 처음 대표 명함이 생겼을 땐 기분이 좋았다. 비록 매출은 희미하고, 거래처도 직원도 없었지만 뭔가 된 것만 같은 들뜬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진짜 대표가 되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사장이다.
주식회사가 되었고, 거래처도 꽤 있으며, 국세청의 레이다망에 걸리는 전자계산서만 십 수 건 발행한다. 들어오고 나가는 돈이 매월 수천 만 원이다. 세금도 수백 만 원에, 급여가 나가는 식구도 늘었다. 사무실도 작지만 한 칸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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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불러도 상관 없다. 대표, CEO, 기업가, 사장, 대표이사… 나는 이런 직함에서 더이상 환상이나 낭만을 느끼지 못한다. 잘 나가는 큰 회사 대표라 해도 내겐 썩 매력적이지 않다.

내가 대표로 기쁨을 느낀다면 (실제로도) 기업가라는 본질 때문이다.

정말 그렇다. 없던 길을 만들어 내고 그게 세상에 기여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결과는 매출, 브랜드, 고객의 칭찬으로 확인된다. 휴, 그러나 그 본질을 수행하기 위해 여기저기 삽질을 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답답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는 것은 정말 고역이다.

이 일을 고역으로 보면 창업을 못한다. 편한 일만 하고 힘든 일은 전문가에게 맡긴다는 생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 더 큰 틀에서 보자면, 그 고역이 있을 때에 비로서 본질을 수행할 수 있다. 고역이 기쁨으로 느껴질 때에, 비로소 과정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Love the process!”라는 말을 이제 나는 온몸으로 이해한다. Bravo!)

올림픽 선수들이 하는 제일 웃긴 말이 “나는 운동을 싫어한다.”라는 것이다. 매순간이 고역이라고 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그 땀을 사랑한다. 이런 역설이 기업가의 본질이라고 나는 어렴풋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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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사장이 그럴 듯해보여서’ 창업하면, 그는 필연적으로 나가 떨어질 거라 생각한다. 혹은 그 전에 실패하거나. 그러나 뭔가를 개척하고 만들어 내며, 그 과정에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면, 그는 결론적으로 사업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사람이 ‘작가가 멋져 보여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 그는 필연적으로 거짓으로 찬 글을 쓰다가 스스로 나가 떨어질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뭔가를 쓰는 일에 취미 이상의 사명감을 느끼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시작한다며느 그는 결론적으로 작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기업가의 명함은 썩 좋아하지 않는다. 때론 숨기고 싶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일이 하나의 사업이 되어 세상에 활기를 주고 내가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곳으로 만든다면, 아, 나는 이미 그런 일에서 큰 의미를 느낀다. 나는 지금처럼 기꺼이 기업가가 되겠다.

p.s. 연애사업이라는 말처럼, 창작도 분명한 사업이다. 내 인생도 사업이다. 나는 내 인생의 최대주주여야만 한다. 누구든지 자신의 인생에서 자기가 최고경영자여야만 한다. 주주라는 이유로, 거래처라는 이유로 내 인생을 흔들도록 두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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