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밑에서 일해야 할 시기가 있다.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그런 시간은 필수다.
정주영도 쌀집에서 일했다. 스티브 잡스도 HP에서 일했다. 일론 머스크도 은행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그렇게 일하면서 꿈을 키웠다.
정주영은 쌀집을 키워 자동차 정비회사를 인수했고 이게 현대자동차가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HP에서 상상력을 키워 창고에서 애플을 만들었다. 일론 머스크는 인턴 생활에서 느꼈던 은행 업무의 고루함을 해결하고자 페이팔을 만들었고, 그후엔 스페이스X와 테슬라를 세워 2021년 전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었다. 이들 모두 남의 밑에서 일했다. 매우 열심히.
– 마작가는 어땠나? 아래 글을 확인해보라.

질문은 이거다.
남의 일에서 무엇을 보는가.
거기서 어떤 꿈을 꾸는가.
흘러가는 대로 놔둔다고 내 인생을 누군가가 저절로 좋은 곳으로 데려다 주지 않는다. 목적과 방향이 없는 배에겐 어떤 바람도 순풍이 아니다. 구체적인 방향을 가진다면 남의 밑에서 일해도 좋다. 요새 말로 “오히려 좋다.” 남의 일을 통해 내 인생 내공을 충전할 수 있으니까.
나는 마케팅으로 일 년에 100억 가까이를 쓰면서 원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시도해봤다. 회삿돈으로 유럽 출장을 다녔고, 특급호텔이며 비즈니스가 마치 내 것인 것마냥 이용했다. 전세계 C-레벨 기업인들과 토론을 하고, 노루가 뛰노는 수백 년 된 유럽의 성에서, 지중해를 떠다니는 초호화 요트 위에서 파티를 즐겼다. 나는 “내 인생의 일”이 목말랐지만, 남의 일도 내 일처럼 몰입했다. 직장인을 늘 벗어나고 싶었지만, 내겐 세 가지 원칙이 있었다.
하나. 회사에서 하나라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
둘. 그것으로 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끊임 없이 치열하게 고민할 것. 설사 지금 답이 보이지 않더라도.
셋. 그러니 안주하지 말 것.
– 안주하면 ‘자신의 진정한 가치’라는 말에 코웃음을 치는 저 사람들처럼 되니까. ‘애가 둘인데 철이 덜 들었구먼’이라고 말하는 저 사람들처럼 되니까.
기업인이 된 지금 내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문과 출신인 내가 요상한 기술과 안목을 가졌다고 부러워한다. 코딩이나 디자인 또는 전공과 관계 없는 이상한 잔기술들이 그것이다. 그 이유는 위의 세 가지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다 뽑아 먹고 내 것으로 만든 기술이다. 혐오하던 직장 생활에서도 그 안에서는 늘 ‘최고’라는 말을 들으려고 노력했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 미래를 위해서였다.1
내 인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구독자 분들께 이런 조언을 하고 싶다.
‘조용한 퇴사’를 위해 ‘최소한의 일만’ 하겠다는 생각은 제발 버리는 게 낫다. 그런 마음으로 시간이 흐르면 나 자신이 무섭게 변한다. ‘남의 눈치를 보는 게’ 평균이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이제 너의 인생을 살아. 그러나 슬프게도 이 말에 나의 내면이 아닌 내 상사와 회사를 쳐다 보게 된다. “답을 줘. You know, 내 삶은 너한테 달려 있잖아.” 그러나 그 순간 회사는 말한다. “아니, 무슨 말이야. 네 인생의 주인공은 너야. 몰랐어?”
이런 순간이 오기 전에, 남의 일에 대한 철학을 재정립해야 한다.

회사가 아니면 해볼 수 없는 무궁무진한 일들이 보배처럼 널려 있다. 그것을 맛보지 않는 것은 ‘더 나은 버전의 나’를 배반하는 직무유기가 아닌가?
It depends on how you look at it.
상사가 아니라 스승이라는 마음으로, 의미 없는 일이 아니라 내가 이겨내야 하는 게임의 퀘스트quest로 받아들이면 어떠려나. 회사가 아니면 해볼 수 없는 무궁무진한 일들이 보배처럼 널려 있다. 그것을 맛보지 않는 것은 ‘더 나은 버전의 나’를 배반하는 직무유기가 아닌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주영,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는 남의 밑에서 일할 때 최소한으로 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어느 위대한 성취를 한 사람들도 그랬다.

- 자랑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이렇다. 네 군데의 직장에서, 나는 단 한번도 회사의 탤런트 프로그램 (다음 경영진으로 점찍고 따라서 개인의 경영자적 성장을 지원해주는 공식, 때로는 비공개 인재 양성 프로그램)에 선발되지 않은 적이 없다. 덕분에 뉴욕 컬럼비아 MBA 같은 해외 교육이나 한 번에 수천 만 원하는 개인 집중 컨설팅 프로그램도 많이 다녔다. 수년 동안 프랑스어 1:1 과외와 고급 비즈니스 영어 1:1 트레이닝을 남들 몰래 지원받았다. 내가 열심히 일한 건 간판을 위해서가 아니다. 일에서 최대한을 빼먹기 위해서였다. 회사가 아니면 해볼 수 없는 무궁무진한 보배들이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나는 언젠가 내 일을 할 거라고 늘 되뇌였다. 내 기록에도 잘 나와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