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작가님은 나와 특별한 인연이다.
강 작가님이 유튜브에서 나를 발견했을 때에, 그는 삶의 교차점을 지나고 있었다. 외교부에서 일하다가 마흔에 오춘기가 찾아왔다. 삶이 허무했고,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나란 생각을 했다. 강 작가님은 육아 휴직을 결심했다. 대금을 배우고, 성우 학원을 다니면서 인생의 또 다른 단면을 탐험하던 중 내가 낸 인턴 공지를 보게 된 것이다. 그게 2021년 가을이다. 나 역시 삶의 거친 폭풍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중이었다.
강 작가님이 지난 주에 회사를 다시 찾았다. 세 번재 방문이다. 그 기록을 좀 남겨볼까 한다. 강 작가님은 지금 두 번째 암투병 중이다.

강 작가님은 정해진 대로 3개월을 근무했다. 그는 언제나 기분 좋은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렇게 진심으로 남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은 없다. 겸손했고, 신중했다. 과일을 사오면 어느 새 씻어와 환하게 권하는 사람, 늘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일을 하다 보니 실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되돌아 보면 강 작가님과 함께 했던 순간은 모두 아름답다.
마지막 근무일에 그를 배웅하면서 언제든 찾아오라고 말했다. 그는 “당연하죠”라고 말했다. 특유의 하이톤으로.
강 작가님은 그 약속을 지켰다. 세 번이나 우리를 방문한 것이다. 첫 번째 방문은 당시 새로운 후임 에디터였던 신작가님께 업무를 가르쳐주기 위해서였다. 아무도 요구하지 않은 일이었다. 강 작가님의 책임감과 배려심이 첫 번째 방문을 이끌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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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방문은 기분이 조금 착찹했다. “암에 걸렸어요”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강 작가님 표정 때문이었다. 우리는 둘이서 제육보쌈을 먹는 중이었다.
지난 주에 강 작가님이 다시 우리를 찾았다. 세 번째 방문이다. “올 때마다 회사가 커지네요”라고 하이톤으로 공표해주니 나도 우쭐하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달부터 작은 사무실을 한 칸 더 쓰기 때문이다. 강 작가님은 야윈 얼굴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여덟 차례의 항암 치료를 끝냈다고 말한다. 숱이 없어진 눈썹이 그 말의 증거였다.
우리는 암에 대해, 건강에 대해, 그리고 자연스럽게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뜻깊고 즐거운 대화였다. ‘분기에 한 번은 와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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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고작 3개월 일해놓고 분기마다 찾아가는 게 좀 오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3개월은 빠르다. 그 무게도 깃털만큼이나 가벼울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인연의 특별함은 그 3개월이 아니라, 그후에도 계속 찾아오는 리추얼에서 비롯된다. 강 작가님은 인생의 교차점 한 가운데에서 나를 만났고, 그 순간을 기념하는 상징적인 이 장소에 자꾸만 자신을 데려오고 싶은 게다.
강 작가님을 면접 보던 날이 생각난다.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웃음, 하이톤, 자연스럽게 꺼내는 순수한 어휘들이 그가 누구인지 대번에 말해주었다. “마작가님 팬이에요”라면서 사진도 찍었다. 그후에도 몇몇 재밌었던 에피소드가 있다. 강 작가님이 외교부에서 상사로 모셨던 외교관이 우리 회사에 작업을 의뢰한 것이다. “와, 저 이 분 알아요!”라고 신기해 하던 날이 생각난다. 그 작업은 강 작가님이 마무리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작가님께 이 기밀을 누설하지 않았다. 그 특별함이 날아가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강 작가님이 앞으로 백 번쯤 더 방문해주길 꿈꾼다. 다소 건조할 수 있는 삶에 단비가 되어주셨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강 작가님은 계속 건강해야 할 의무가 있다. 삶이 늘 즐겁지 않더라도, 하이톤의 긍정적인 마음을 지켜내야 할 의무도 있다. 그런 인생을 담아 책을 몇 권 더 출판하라고 나는 잔소리를 할 것이다. 내게도 도전적인 과제가 있다. 강 작가님이 계속 방문할 수 있도록, 나는 이 회사를 살려 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
아름다운 인연이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