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주차, 88%
2023년의 46주가 지나갔다. “이젠 2023년이다. 세월 빠르다.”라고 이야기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그 한 해도 12%가 남았다.
이런 식으로 몇 번을 반복하면 인생은 황혼에 다다른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만 생각할 때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렇게 적는 행위로 나는 의식하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는 대신, 한 글자 한 글자 쓰듯이, 한 주 한 주를 자각하고 내가 이 시간을 제대로 “살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다.
한 주간 나의 생각
2023년의 46번째 한 주는 요추 신경통 약으로 인해 내내 몽롱했다. 근육이완 성분이 강한 약이 내 물리적 근육뿐 아니라, 생각하고 집중하고, 때로는 부정적인 상황들을 이겨내야 하는 심경까지 느슨하게 만든 것 같았다. 의욕을 끌어내기가 유독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 다음 채용을 위해 면접을 진행했고, 채용을 결정했다. 회사에서는 동료에게 새로운 일을 맡겼고,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였다. 예전에는 성취에 대해 ‘개인이 알아서 잘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손을 잡아 이끌어주고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동료의 미덕이고, 결국 그런 문화 자체가 경쟁력이요 자산이라는 점을 알아가는 중이다.
사업은 결국 사람이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말 안에는 부정할 수 없는 진실과 본질이 숨어 있다.
내가 지금 실험하는 것은 ‘회사와 사람’이 필요한 것만 빼가는 이해타산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꿈을 공유하고, 그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인생의 long-term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과연 이런 이상적인 관계가 가능한 것일까? 나는 그것을 집요하게 실험하는 중이다.
46주차 기록
11월 12일 일요일. 몽롱함.
약으로 몽롱한 하루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아이들과 장난치며 뒹굴거렸다. 나는 주로 “쉬고 싶다는 생각은 나약한 게으름이다. 대오각성하고 자신을 채찍질해야 한다.”식의 이야기를 즐겨 하지만, 내가 이렇게 몽롱한 날이면 나 스스로도 설득하지 못한다.
이런 날에 대한 내 해법은 “너무 지겨워서 뭔가를 하고 싶을 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수첩에 글을 하나 썼다. “퇴사하고 3개월 내에 반드시 해야 할 일 리스트”다.
11월 13일 월요일. 위인의 인생을 읽어라.
업무 확인과 신사업 웹페이지 디자인 검토로 바빴다. 그래도 수첩에 글을 하나 썼다. “자기계발서를 읽지 말고 훌륭한 역사적 스승들의 전기를 읽어라.”는 내용이다. 내가 다시 독서를 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생활을 갖게 된다면 할 수 있는 한 많은 위인들의 전기를 읽을 것이다.
11월 14 화요일. 완벽한 날.
내게 완벽한 날은 별 게 아니다. 나의 3대 할일을 해낸 날이다. 고강도 운동을 했고, 퇴근 후 지친 몸을 달래 유튜브 영상을 찍었으며, 집에 가서는 글을 썼다(“LG트윈스의 우승에 즈음하여“). 이런 날이 반복되면 내 미래는 후회 없다. 자축을 핑계 삼아 연어회에 스파클링 와인을 마셨다.

11월 15일 수요일. PT, 피자, 채용.
퍼스널트레이닝으로 고강도 운동을 했다. 간식으로 사무실에서 피자를 시켜먹었다. 왁자지껄하기보다는 차분한 분위기가 여느 공동체와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면접 결과를 취합해 최종 1명에게 채용 통보를 했다. 술을 마시지 않았다.
11월 16일 목요일. 매년 수능 리추얼.
매년 수능일 나는 두 명의 추모한다. 매년 수능일 나는 아버지의 산소를 방문하고, 이십 대의 나이에 세상을 먼저 떠난 처제의 납골당을 방문한다. 아들 녀석은 처제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몇 년을 따라다녔다. 사진 속 아리따운 처녀를 내 동생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에 빵 터졌다. 오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고, 저녁엔 스파클링 와인에 꼬막을 먹었다.
11월 17일 금요일. 강원도.
재택근무를 하고 오후엔 강원도 별장에 갔다. 강풍으로 텐트와 지붕이 날아갔다. 수도권과 달리 눈에 쌓여있다. 오리고기 구워 막걸리를 마셨다.
11월 18일 토요일. 별장 수리, 고구마, 영상 편집.
오전 내내 망가진 별장을 수리했다. 유튜브 영상을 찍었다. 점심엔 단골 칼국수집에 다녀왔다. 땅이 얼기 전에 마지막으로 고구마를 캤다. 그리고 이 글을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