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와도 나는 놀라지 않는다

연말이 되면 깜짝 놀라는 사람들

연말이 되면 이렇게 놀라는 사람들이 있다.

“벌써 한 해가 갔어. 믿을 수가 없네. 한 일도 없이 이렇게 1년이 지나 버리다니.”

나도 그런 부류였다. 야생에서 새로운 시도를 즐기는 DNA를 숨기고 회사원의 정체성을 이식받아 생활할 때에는 그랬다.

독립 이후에는 달라졌다. 가만히 있어도 월급이 나오거나, 가만히 있어도 승진이 되는 일이 없는 야생의 세계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2020년 1월부터 나는 매 순간이 연말 같았다.

벌써 1월이 갔네. 내가 하려고 했던 시도를 완수하지 못했어. 벌써 2월이 갔네. 아직 테스트를 런칭하지 못했어. 벌써 3월이네. 홈페이지를 구축하지 못했어….

12월이 되면 나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직 한 달이 남았다. 이렇게 한 해의 끝이 오리라는 걸 난 알고 있었어.”

매순간 시간을 인지하고 살았다고 생각했다. 12월이 되면 나는 묘한 쾌감도 든다.

‘그렇게 고대하던 12월이 드디어 오셨군.’

겁나지만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네가 갑자기 찾아온 것처럼 행동해도 놀라지 않아. 나는 네 놈이 오리라는 걸 알고 단단히 준비해두었지. 그 뒤로 노년과 죽음이 또 갑자기 찾아올 것처럼.

2024년 내가 만들고 내게 일어난 일들

1분기

법인의 사무실을 이사했다. 공유오피스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사무실을 갖게 되었다. 정신 없이 0부터 다시 시작한 사무실 살림에서 많은 걸 배웠다.

법인의 대규모 인력 순환이 있었다. 귀한 인연이 대거 유입되었다.

‘본격적’으로 유튜브와 블로그 글에서 손을 놓게 되었다.

2분기

신제품이자 새로운 브랜드로 콘텐츠 서비스 플렛폼을 런칭했다.

6월에 법인의 최고 매출 기록을 세웠다.

2년간 해오던 피트니스 개인 수업 덕분에 몸이 눈에 띄게 탄력을 받았다. 파워리프팅에 관심이 생겨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했다. 척추관협착증이라는 사실에도 데드리프트 130kg, 스쿼트 120kg, 벤치프레스 97kg을 들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걸 느끼고 배웠다.

생애 두 번째로 아파트를 매입했다. 은행 대출을 알아보느라 바빴다. 광명역 앞의 첫 번째 아파트를 팔고 나서 15년 만이다. 살고 있는 동네에서 좋은 매물을 괜찮은 조건으로 샀다. 여기에 대해서도 조만간 포스팅하고 싶다. 내가 아파트를 산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아무리 좋은 회사에 다녔어도 나는 불안정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지금에야 나는 안정을 느낀다. 내가 평생 할 일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런 안정이라면 아파트 대출금에 내 미래를 저당잡혀도 좋다고 생각했다. 둘째, 전세가 폭등을 겪고 나니 기회 비용을 따져보게 되었고 이제는 못 참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잊지 말라는 듯이 간간이 유튜브 콘텐츠 올리고 블로그를 썼다.

3분기

9월에 최고 매출 기록을 경신했다. 월매출이 1억에 육박했다. 그러나 이런 매출 기록은 상징적이다. 회사는 부자가 되지 않는다. 대표인 나도 그렇다. 일이 많아지면 덩치가 커지고, 덩치가 커지면 고정비용이 커진다. 이렇게 커지다가는 매출 한두번 미끌어지는 것이 바로 적자로 이어진다. 그런 것을 배웠다.

4대보험에 가입한 회사 구성원이 11명까지 늘었다.

일이 너무 많아져서 사무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특히 악성 고객 때문에 속앓이를 많이 했다. 그럴수록 나는 ‘소수의 진짜 고객’을 찾아 상대할 필요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유튜브나 독자도 소수의 진짜가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를 잊지 말라는 듯이 간간이 유튜브 콘텐츠 올리고 블로그를 썼다.

4분기

법인 사무실을 다시 한번 이사했다. 1년에 두 번의 사무실 이사라니. 빛이 깊숙히 들어오는 40평대 사무실이다. 내 손이 많이 갔고, 유니크한 인테리어와 콘셉트의 사무실이 탄생했다. 그 사무실에는 늘 음악이 흐르고, 사방이 작은 숲으로 둘러쌓여 있다. 그 사이로 순수하고 여린 창작자들이 수다를 떨며 웃음꽃을 피우고, 창작물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지점이 생겼다. 기존 사무실을 비우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독립서점형 아지트와 소극장으로 쓰기로 했다. 지점 사업자등록증이 생기고 서점 사업을 등록했다.

집을 이사했다. 우리 부부 명의의 집이라서 흔히 말하는 ‘올수리 인테리어’를 했다. 그사이 우리 가족은 동네의 작은 아파트를 얻어 살았다.

이렇게 몇 번의 이사로 내 허리에 다시 문제가 생겼다. 들고 나르는 과정에서 무리가 간 듯하다. 운동은 강도를 줄였고, 마취통증병원에서 신경차단 주사를 척추에 맞아야 했다.

1분기에 들였던 귀한 인연 몇 명을 정규직 ‘식구’로 삼았다. 나는 세상에 없던 회사를 만들고 싶다. 혹은 너무 이상적이서 세상에 없을 것만 같은 그런 조직을 만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DNA를 형성할 수 있는 강력한 초기 멤버가 반드시 필요하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 가장 많은 기간이었다. 부끄럽지만 올해 6일 동안 술을 마시지 않은 것이 최고 기록인데, 이미 3일째 되는 날부터가 기록이었다. 나는 하루나 이틀 걸러 밤마다 술을 한 잔씩 마셨다. 어쩌면 이 고된 싸움을 이겨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을 한 것 같다. 실제 나는 누구와 함께보다는 나 홀로 명상하듯이 술을 마실 때가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다 핑계였다. 최근 보름 동안은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이 술을 마신 날보다 많았다. 그 시간에 더 많이 쓰고 이야기하는 데에 에너지를 썼으면 하고 바란다.

12월이 와도 나는 놀라지 않는다. 오늘이 12월 31일이라고 해도 그렇다.

시간의 흐름과 내 유한한 삶을 더 자주 인지할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그러한 행운이 함께 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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