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말고 회사, 전략과 의도에 따라서 “남아라”

안정은 환상이다. 내 인생을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을 편안하게 생각하지 마라. 겉으로 보이는 안정은 가장 취약한 불안정을 내포하고 있다.

가장 확실한 안전 장치는 독립이다. 스스로 내 삶을 통제하는 이사회의 주주가 되어야 한다. 그 안전 장치를 위해서는 위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역설적이다.

그러나 언제? 지금 당장? 퇴사가 만능키는 아니다.

서른 여덟 즈음 되었다면 독립에 대한 준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마흔이 넘었다면 이제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셈이다. 서른 여덟이든 마흔이든, 그 사람에게 맞는 때가 올 것이다. 그가 삶의 어떤 단계를 지나고 있는지에 따라, 그가 무엇을 좇는지에 따라 다르지만 방심해서는 안 된다. 언제나 그랬듯, 심판의 날은 어느날 갑자기 다가오는 법이다.

만약 이런 이유 8가지에 해당된다면, 회사에 남는 것을 추천한다. 전략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그래야만 한다. 준비하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

경력을 전환할 수 있는 희소한 기회가 왔을 때

영업 사원인데 마케팅으로 옮길 기회가 있다면, 그리고 마케팅이 내 다음 인생에 필요한 것이었다면, 기다리는 편이 낫다. 제 아무리 학원을 다니고 대학원을 다녀도 실무만큼 못하다. 월급이 좋으니 눌러 앉는 게 아니다. 커리어를 전환할 수 있는 기회는 정말로 흔치 않다. 나는 영업 사원에서 마케팅으로 스카웃되었다. 덕분에 새로운 꿈을 꾸고, 글로벌 무대에서 내 지도를 넓혔다. 내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사업을 확장시키면서도 내 목소리를 잃지 않는 건, 마케팅에서 경험한 브랜드 전략 덕분이다. 내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퇴사라는 거대한 전환보다는, 커리어를 트는 작고 확실한 전환을 택했을 것 같다.

내가 평생 하고 싶은 일 = 회사의 사업 분야

소설 쓰기를 평생 꿈꿨는데 회사가 출판사다. 문학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기획과 편집, 작가 네트워킹을 경험할 수 있다. 소설로 먹고 살고, 소설가라는 커리어를 쌓고 싶다면 출판사야 말로 최적의 환경이다.

그런 예시는 많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회사가 디자인 에이전시다. 영상 편집에 푹 빠졌는데 회사가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다. 게임에 인생을 걸어 보고 싶은데 게임 개발사다. 요리를 사랑하고 오너 쉐프가 꿈인데 회사가 외식업 체인 기업이다. 작곡과 프로듀싱이 소원인데 회사가 음악 기획사다. 애니메이션 마니아고 언젠가 제작을 꿈꾸는데 회사가 애니메이션·웹툰 제작사다.

“내가 평생 하고 싶은 일”과 “회사의 현재 비즈니스”가 맞아떨어진다면, 회사를 떠나기보다 그 안에서 내 꿈을 더 크게 확장해볼 기회를 찾는 게 낫다. 단순히 월급을 받는 직원이 아니라 회사와 내가 ‘공통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공동체·동료가 될 수 있다.

내가 “자율적”으로 몰입해서 일한다면, 이미 독립한 사업가나 다름 없다.

끝내주는 회사 문화

남다른 미션과 가치관을 가진 회사들이 있다. 그 결과는 문화로 나타난다. 어떤 사람들에겐 문화가 연봉보다 중요하다.

다른 건 몰라도 칼퇴근을 보장하는 회사를 찾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과차장 시절 나는 10시에서 5시까지만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런 회사를 만들었다.

환경보호에 진심인 사람이 있다. 그는 재생 에너지 기업에서 큰 가치를 느낄 수 있다. 복지가 중요한 사람에겐 휴가, 출산육아 지원, 정신건강 상담, 사내 어린이집 운영 등눈에 들어올 것이다. 신기술에서 가치를 느끼는 사람은 인공지능이나 로보틱스 등의 혁신에서 단순한 직장 이상의 가치를 느낄 것이다.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실험적 시도를 존중하며 수익만큼이나 창의성에 가치를 두는 조직에서 자아실현을 펼칠 수 있다.

이런 가치관과 문화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금전적 보상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몰입감이 생긴다. ‘내가 여기서 일하는 이유는 이것 때문이야.’가 분명하다면, 그 안에 머무르며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물론 하려는 일이 그 가치관의 연장선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회사의 인재 발굴 리스트에 선정되었을 때 (talent program)

잘 나가는 회사라면 인재를 발굴해서 키운다. 공개적으로, 그리고 때로는 비밀리에 진행한다. 그들에게는 해외 연수, 고가의 컨설팅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수 억 원짜리 MBA를 보내주기도 한다. 회사에 좋은 기회가 오면 가장 먼저 그들을 발탁한다. 승진이야 말할 것도 없다. 내 마지막 직장에서 나는 Asia-Pacific 지역의 탈렌트 프로그램에 속해 있었다. 뉴욕의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홍콩의 프라이빗 커리어 컨설팅, 아일랜드, 프랑스, 그리스에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모두 비즈니스 클래스를 탔고 5성급 호텔에 머물렀다. 내 돈은 1원도 안 들었다. 그런 희소한 혜택들이 내 회사생활을 연장시켰다. 장단점이 있지만 그때의 경험은 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회사에서 키워줄 생각이 있다면, 당분간은 그 안에서 다음 길을 찾아라. 흔치 않은 기회다.

아주 현실적인 한 수다.

회사의 조기퇴직 리스트에 선정되었을 때

어떤 사람은 정반대다. 회사에서 ‘조기은퇴 리스트’에 올라있는 사람들이다 (혹은 선정될 것 같은 사람들). 회사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게 아니라면, 이들은 평소 일잘러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많지 않을 것이다. 혹은 젊었을 때에 잠시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일잘러임에도 나이나 연차 때문에 그 리스트에 올랐다면, 아직 승산은 있다. 솔직히 말하면 좀 늦은 감이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이런 순간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으름을 피웠을 것이다. 아직 기회가 있다. 더 정신을 바짝 차리길 응원한다.

독립해서 나만의 길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열정도 필요하지만 수많은 일을 혼자서, ‘잘’ 처리해야 한다. 일잘러여야 한다. 일잘러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 없다면, 그 안에서 더 버티는 게 나을 수 있다. 미안한 말이지만 밖은 더 험하기 때문이다. 밖에 나와도 승산이 없을 수 있다. 그런 분들에게 맞는 조언도 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전혀 다른 분야를 찾아라.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데에도, 남들 눈에는 일잘러가 되는 그런 분야.

당신에게 있다.

재정적 쿠션이 없을 때

1년치 생활비는 모아놔야 한다. 미래의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에이 뭐 그런 일 있겠어?’라고 생각하지 말자. 예상할 수 없으니까 리스크다.

새로운 일로 독립하고 어느 정도 현금 흐름이 생기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내 경험상 최소 6개월은 필요하다. 시도하고, 실험하고, 실패에서 배워서 다시 시도하는 일이 반복되어야 한다. 모아놓은 돈이 없으면 실험의 기회가 없어진다. 마음이 조급해지기 때문이다. 마음이 조급해지니 실험을 할 수 없다. 그보다는 확실한 한 방, 남들이 꼬득이는 것들,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전형적으로 나쁜 선택이다.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인데 남들 이야기만 듣게 된다. 모아놓은 돈은 쿠션처럼 작용한다. 바닥에 떨어져도 죽지 않는다.

첫 시도가 바로 성공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드물다. 사실은 없다고 봐야 한다. 철저히 준비한 대기업도 신제품 출시에 대부분 실패한다. 퇴사 후 독립을 꿈꾼다면, 나 자신에게 실험할 수 있는 활주로를 허락해야 한다. 비행기가 뜨려면 긴 활주로를 달려야 한다.

그것도 전속력으로.

내 분야의 멘토가 있을 때

내가 독립하려고 하는 분야의 구루가 회사에 멘토로 있다면 어떨까. 최고의 기회다. 내겐 그런 멘토가 없었다. 운이 없었다. 대부분은 운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멘토가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나중에 저도 독립하고 싶습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그를 보며 따라하자. 나중에 생기는 인맥 레버리지는 덤이다.

마음이 힘들 때

번아웃, 이혼 등으로 자신을 통제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독립을 미루는 게 낫다. 자기만의 길을 찾는 건 힘든 일이다. 누군가에겐 번아웃이나 이혼보다 더 힘들다.

독립의 과정에 몰입하려면 일단 마음을 추스리자. 그렇다고 별 것도 아닌 일에 엄살 부리지는 말자. 언젠가 한 번은 닫아야 할 문이라면, 결심의 순간이 필요하다.

남아서 추스리든, 새로 박차고 나가든 마음이 중요하다. 마음이 연료다. 그걸 불태워서 앞으로 나아간다.

결론

남을 이유가 있다면 남아야 한다.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가 선명하면 더 좋다. 그 이유가 내 꿈과 맞아떨어진다면 결정이 쉬울 것이다. 회사라는 판에서 스스로를 키우고, 마음과 재정적 쿠션을 갖추자.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덜 흔들린다. 회사가 주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때를 기다리자. 그러나 너무 길면 곤란하다.

회사가 내 비전과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면 나갈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더는 배울 것도, 성장할 기회도 없다면 결심할 날이 머지 않았다. 독립의 길은 쉽지 않지만,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이사회의 주주가 되려면 결국 뛰어들어야 한다. 기존의 문을 닫아야 새로운 문이 열린다는 걸 명심하자. 중요한 건 ‘왜’라는 질문에 선명하게 답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다. 때가 됐을 때, 회사를 떠나든 남든, 그 선택이 분명하면 헛된 후회는 없다.

#퇴사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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