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의 휴가와 열 명의 인생

열흘의 안식 휴가

안식 휴가를 가지기로 했다. 12월 마지막부터 1월 초까지, 휴일을 붙여 열흘 간 쉬기로 했다.

동료들과 모여 이야기했다. 각자 어떻게 열흘을 보낼지 궁금했다. 크로키를 그리겠다, 출간기획서를 쓰겠다, 인생 영화를 다시 보고 정리하겠다, 1년을 정리하는 글을 쓰겠다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열흘 동안 그 약속을 지키자고 다짐했다.

오늘로 열흘이 끝났다. 월요일이 되면 우리는 테이블에 모여 열흘 전 이야기했던 각자의 열흘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각자의 열흘에 대해 열 명의 인생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어쩌면 열흘이 시작되기 전부터 나는 이 말이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열 명의 인생 후배들에게

대부분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못된 말일 수 있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 잠깐 한눈 팔았을 뿐인데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버렸을 것이다. 뭔가 하려고 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거나, 그냥 게을러서 나 몰라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인생은 원래 그런 거니까.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어영부영 시간을 보낸 사람이 있을 것이다. 돌아보니 애초에 계획이 잘못되었다고 느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왜 약속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 거북함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혹은 이 정도면 됐다고 자신을 합리화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이는 훌륭하게 잘 해냈는데도 자신을 못 살게 굴기도 할 것이 분명하다. 따져보니 내 열흘도 여기 어디쯤이다.

이 열흘을 망쳤다고 해서 인생이 골로 가지 않는다. 이 열흘의 약속을 잘 수행했다고 해서 인생이 펴는 것도 아니다. 이 열흘은 일년에서 겨우 2.7%를 차지할 뿐이다.

정말 그런가? 적어도 귀한 열 명의 인생 후배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이 열흘이 얼마나 무서운지에 대해 말하고 싶다.

열흘의 의미

열흘이 세 번 반복되면 한 달이고, 열흘이 서른 여섯 번 반복되면 일 년이다. 이번 열흘은 예외일 뿐이고, 다음 열흘에는 잘 할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이번 열흘은 단순한 열흘이 아니다. 이번 열흘은 후배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이번 열 밤은 후배가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왔는가에 대한 단면이다. 이번 240시간은 후배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냉철한 지표다. 이번 열흘 간 계획만 거창하고 실행 결과가 없었다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지 마라. 후배가 그렇게 살아왔다는 증거다.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지 마라. 더 무서운 건 앞으로의 열흘과 수많은 열흘의 은하수도 그렇게 될 거라는 섬뜩한 통계다.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지만, 다음 열흘은 예측할 수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열흘이 후배의 인생을 가득 채웠으므로, 다음 열흘은… 이 열흘의 복붙이 아니기도 힘들다. 우주의 그 어느 변화도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어느날 갑자기 땅을 뚫고 나온 새싹은 없다. 땅속에서 중력과 흙더를 들어올리며 끊임없이 변화한 결과다. 후배가 이번 열흘은 아니라고 손사레를 쳐도 소용 없다. 호모 사피엔스가 20만 년 전에 출현해서, 5만 년 전에 언어가 나타났고, 수메르 문명이 나온 지 5천 년이 되었지만, 살아온 습관이 미래를 규정하는 법칙은 바뀐 적이 없다.

후배는 후배가 먹은 것의 합이다. 후배는 후배가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낸 다섯 사람의 평균이다. 무엇보다 후배는 후배가 보낸 열흘의 합이다. 후배의 인생은, 내 인생처럼, 어느날 끝을 맞이할 텐데, 그 인생은 우리가 보낸 열흘의 성공과 좌절이 실줄과 날줄로 직조되어 남겨질 것이다. 그 직조의 방식은 평직일 수도 능직일 수도 있는데, 한번 시작한 방식은 이미 견고한 패턴이 되어 버릴 것이다. 바꾸려면 정지 마찰력을 이겨낼 만큼 큰 힘이 필요할 것이다. 관성으로는 어림도 없다. 지축이 흔들리고 어질어질할 만한 변화의 힘과 충격의 순간이 없으면, 후배는 무작위로 뽑은 어느 열흘이 보여준 방식으로 인생의 직조를 계속할 것이다.

지난 열흘이 내 인생이 되어도 좋은가.

좋다면 축하한다. 그런데 아니라면 어쩔 건가. 이 열흘이 내 인생을 지배하도록 놔둘 것인가.

어떤 열흘에서 뭔가를 배워야만 남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

1. 조급함을 가져라

시간은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열흘을 보라.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보라. 앞으로의 열흘도 다르지 않다.

물리학에서는 관찰자가 빠르게 움직일수록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약간의 조급함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시간이 흐를수록 무질서(엔트로피)는 증가한다. 무질서가 내 열흘을 좀먹기 시작하면 점점 더 변화는 어려워진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에 바꿔야 한다. 냉철하게 생각해야 한다. 인류의 선구자들이 말한 것처럼, 인생은 마치 열흘처럼 지나갈 것이므로. 이 인생이 결코 길지 않다.

2. 하나만 해라

열흘을 보라. 몇 가지나 이루었는가. 한두 가지도 해내기 어렵다. 제대로 하기엔 한 가지도 만만찮다. 그 이상을 꿈꾸지 마라. 인생은 우선 순위다. 자잘한 숙제들을 마쳤다고 훌륭한 하루나 훌륭한 열흘이 되지 않는다. 주변적인 것들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경우가 많다. 혹은 최소한의 요건만 넘으면 되는 것들이다. 주변적인 것은 주변에 두고,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찾아내라. 사람마다 다르므로 나를 들여다 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을 꼽아 줄을 세워라. 그때그때 바뀌는 게 마음이므로, 적어두고 걸어두라. 그 기록을 성서처럼 보배롭게 여겨라. 꿈에서도 말할 수 있을 만큼 되뇌여라. 시간이 지날수록 무질서가 그 마음을 어지럽히기 위해 증식할 것이므로, 단단히 각오해라.

내 인생의 하나가 뭔지 모르겠다고? 그럼 그것을 찾는 것을 후배 인생에서 우선 순위로 만들어라. 반드시 보답하리라.

3. 효율과 속도를 배워라

하나만 하기엔 인생엔 너무나 많은 숙제들이 있다. 하나를 하려면 나머지는 빨리, 정확하게, 정해진 만큼만 헤치워야 한다. 거기서 번 시간과 에너지로 진짜 중요한 한 가지를, 한번에 하나씩 몰입하라. 모든 철학자와 예술가는 일잘러였다. 손이 빠르다는 말을 듣도록 노력해라. 일머리가 좋다는 말을 듣도록 노력해라. 한 번에 여러 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해라. 그렇게 못하면 우선순위가 낮은 것들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정작 중요한 하나는 손도 못 댄다.

4. 환경을 바꿔라

시도해라. 실패할 것이다. 또 시도해라. 어쩌면 성공하겠지만 또 실패할 것이다. 그러다 열흘이 몇 번 흘러갈 것이다. 그러다 그런 열흘에 질려버린다면 환경을 바꿔라. 주변을 바꾸라는 말이 아니다. 나를 옮겨라. 나를 새로운 환경으로 데려다 놔라.

열심히 한다고 탁월해지지 않는다. 내가 탁월해질 수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 놓으라. 누구나 자기가 타고난 기질과 천성이 있다. 엉뚱한 곳에서 버티며 밤마다 울지 마라.

전혀 새로운 장소에서 하루를 보내라. 그렇게 시작해라.

5. 거절하라

우선순위는 하나를 더 열심히 하는 게 아니다. 그것 외에는 다 거절하는 것이다. 내 열흘을 좀 먹었던 것들이 무엇인지 똑똑히 들여다 보라. 그것들을 거절해야 한다. 그것들과 싸우지 않고 평화를 원한다면, 열흘은 계속 반복될 테니까.

6. 일기를 써라

기록하지 않은 날은 존재하지 않는다. 열흘을 보라. 순간 순간을 밀도 있게 살자. 그 밀도는 기록으로 채워진다. 기록하면서 나만의 조급함을 풀어내라. 나만의 ‘한 가지’는 무엇인지 기록하라. 내 마음을 탐구해라. 거절할 것을 적고, 거절할 각오를 써라. 내 열흘에 대해 고해 성사를 해라. 앞으로의 열흘을 다시 꿈꾸라.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일기를 써라. 이 작은 행동이 하루를 바꾼다. 열흘을 바꾼다. 그리고 내 인생을 바꾼다.

열 개의 멋진 인생을 기대하며

이 글이 도움이 되어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좋다. 다만 이 열흘을 통해, 우리 열 명이 더 나은 인생을 찾길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이 열흘을 기억하며 충만한 인생의 꿀에 대해 서로 나누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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