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출판 사업가의 자부심 (예술가의 돈벌기)

어느날 사업가

나는 세 개의 정체성이 있는데, 하나는 우리집의 가장, 다른 하나는 작가 그리고 마지막은 사업가다.

나는 어느날 사업가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수동태다. 사업가를 꿈꾸거나,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노력한 적이 없다.

나는 사업에 대한 고정관념도 없는 편이다. 나는 사업이 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포교 활동도 사업이고, 공정한 세상을 위한 캠페인도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부처가 사람들에게 해탈을 설파한 것도 공익 사업이었다. 예수가 회개하라고 하느님에게 돌아가라고 복음을 전파한 것도 사업이었다. 그런 면에서 사업은 ‘하는 것’이 아니라 ‘일으키는 것’이다. 나는 책을 쓰고, 유튜브에서 이렇게 말해왔다. “자기가 주인공인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진짜 인생을 찾기 위한 전환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스마트한 퇴사가 그렇다. 나만의 인생으로 전환하고 싶다면 하나의 문을 닫아라. 그래야 새로운 문이 열린다.” 말하자면 이런 메세지도 내가 일으키는 사업이었다. 그리고 내겐 작가라는 문이, 사업이라는 문이 열렸다.

출판사업

사업이 곧 돈은 아니지만, 내가 말하는 사업가로써 정체성이란 돈을 버는 사업을 뜻한다. 어느날 돌아 보니 나는 돈 버는 사업가가 되어 버렸다. 언론에는 우리 법인 이름이 떠돌고, 동료가 10명이 넘는다. 사무실이 두 개에, 패시브 인컴은 수 백만 원이 되었다. 게다가 나는 출판사 대표로 고용노동부에 불려가서 ‘출판인 멘토’를 하는가 하면 공공단체에서 ‘콘텐츠 마케팅 특강’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출판사 대표가 되려고 한 적이 없는데! 이 모든 게 내가 원했던 삶과 거리가 있다. 예상치 못했다는 거지, 싫다는 건 아니다. 나는 사업가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무척 마음에 든다.

이 글은 그런 내 마음에 대한 기록이다. 내가 출판 사업을 좋아하고, 또 앞으로 평생 업으로 삼고 싶은 이유에 대해 쓴다.

예술

출판은 가장 오래된 예술이다. 인류의 위대한 지혜는 모두 기록에서 시작되었다. 예술가는 스스로 기록한다. 선지자는 기록으로 남겨진다. 예수와 부처가 제자들과 나눈 언어는 시공을 초월한다. 필사본으로, 목판 대장경으로, 혹은 인쇄된 책으로. 출판은 쓰고 그린다는 행위에 있어서,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본질적인 예술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사상과 자유혼을 알린 것은 바로 출판이라는 예술 비즈니스 덕분이다.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사업도 먼 훗날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책을 팔아서 떼돈을 벌긴 힘들다. “출판 사업은 단군 이래 불황이 아닌 적이 없다.” 출판 업계에 알려진 우스갯소리다. 전자책으로 매월 수백 만원 월세를 받는다는 후기는? 부업 거리를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 강의를 팔기 위한 마케팅일 뿐,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비록 대박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출판 시장의 생명력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독자는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가 생존하는 이상 책을 쓰고, 팔고, 읽는 시장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시장에서 스마트-하게 포지셔닝할 수만 있다면, 먹고 사는 데에 걱정하지 않을 만한 수익을 만들 수 있다. 시장은 계속 진화한다. 예전처럼 오프라인에서 팔리는 종이책이 시장의 전부라고 생각해선 곤란하다. 종이책은 굿즈화되고 있다. 읽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굿즈처럼 보관한다. 전자책은 내용이나 형식이 점점 더 가벼워진다. 플렛폼은 서점을 벗어나 확장되고, 예전 같으면 완성도가 낮다고 거절당했을 법한 소셜미디어 콘튼츠가 곧 출판의 소스가 되고 있다.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작가와 출판업 종사자에겐 기회가 찾아온다. 출판 사업은 돈을 벌기에도 여전히 매력적인 시장이다.

거래의 품위

예술가나 사상가로 태어나는 사람이 있다. 빈센트 반 고흐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그리고 이중섭처럼 말이다. 이들은 먹고 사는 데에서 좌절한다.

백화점에서 물건을 팔까, 동사무소에서 민원을 받을까, 아니면 기중기를 운전할까. 사회적으로 알려진 대부분의 일자리는 이들에게 적합하지 않을 확률이 많다. 이들은 자신이 신성하게 주어진 삶을 허비하고 또 모독하고 있다는 생각에 밤마다 자괴감에 빠지리라.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직업이 아니다. 예술 거래다. 이를테면 이렇다.

첫째, 자신이 창작한 예술품을 돈으로 바꾼다. 예술품에 대한 거래다. 작품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그 거래가 쉽지는 않을지라도. 둘째, 자신의 창작 재능을 돈으로 바꾼다. 재능과 노동력에 대한 거래다. 빈센트 반 고흐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문구 디자인 회사에 일러스트레이터와 포토샵으로 그린 디자인을 제공할 수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도 할 수 있다. 아침 산책을 하는 김에 번화가까지 걸어나와, 반 나절 정도 파트 타임으로 교회나 학교에서 만드는 회보의 맞춤법 검사와 카피 라이팅으로 자신의 재능을 돈으로 바꿀 수 있다. 셋째, 예술과 관련한 사업을 한다. 카프카는 창작 공방을 운영하며 공간을 대여하고 책쓰기 모임을 리드할 수 있다. 바스키야는 부티크 클럽을 운영하며 예술가들의 아지트를 만들고 그 안에서 술이나 음식을 팔 수 있다. 유배 생활로 가난했던 정약용이 아이들을 가르쳤던 것처럼, 이중섭은 학생들에게 입시 미술을 가르칠 수 있다. 혹은 버지니아 울프처럼 출판사를 만들어 T.S. 엘리엇, 제임스 조이스 같은 예술인들의 작품을 세상에 알릴 수도 있다.

앞서 말한 예술가와 사상가들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자신과 동떨어진 노동을 계속한다면, 이 아름다운 영혼들은 삶의 진액까지 다 빠져버린 듯한 허탈감을 매일 밤 느낄 것이다. 그 안에는 땅바닥에 떨어진 품위에 대한 자존감 훼손도 큰 몫을 차지하리라.

그러므로 바라옵건대, 이 시대에 예술가와 철학자 그리고 사상가로 태어난 방황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해야 한다. 예술 분야에서, 자신의 창작물로, 재능으로, 사업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비록 생활이 간소할지라도, 이 독립적이고 품위 있는 거래는 우리의 삶을 ‘내가 태어난 대로‘ 지키게 해준다.

출판은 예술 사업이고, 난 이 거래의 품위에 무척 만족한다. 이는 사업가인 나에게도, 대표는 아니지만 나와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들에게도 모두 해당하는 말이다. 감출 수 없는 창작가 DNA를 갖고 사람이 자신의 재능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면, 이보다 더 품위 있는 돈벌이가 어디 있단 말인가.

마케팅

출판 사업은 예술이기도 하지만 마케팅이기도 하다. 빈센트 반 고흐는 그가 죽고난 후 제수씨인 요한나가 활동한 덕에 유명해졌다. 요한나가 빈센트와 동생 테오의 편지를 정리해 출판하고, 수백 점의 남겨진 예술품을 팔기 위해 무척 애썼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자신이 책을 쓰기만 하면 잘 팔릴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마케팅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케팅은 좋은 작품이 잘 발견되도록 설계하는 일이다. 가장 클래식한 ‘예술’과, 가장 트렌디한 ‘마케팅’의 조합. 예술과 과학 이 둘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모두 다룰 수 있다는 것이 출판업의 매력이다.

특권

소셜 미디어에 올린 짧은 동영상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지만, 때로 책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은 인문학적 정수로 꼽히지만, ‘문장을 쓸데 없이 베베 꽈서 이해가 어렵다’거나 ‘무슨 소리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현학적인 글’이라는 평이 많다. <월든>은 어떻게 보면 난해하고, 예술적이며, 깊이 있는 교양이 필요한 책이다. 그런 면에서 책과 출판이라는 영역은 아무나 느낄 수 없는, ‘그것을 이해한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독특한 바이브가 있다. 섬세하고도 독특한 이 문화를 노동하는 매 순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출판업의 특권이다.

고객의 품격

백화점 VIP 고객 중에 품격이 낮은 사람이 많다고 한다. 돈이 많아도 교양이 없으니 고객 담당자한테서 졸부 소리밖에 못 듣는다. 나 역시 고객을 많이 상대해봤다. 사회 초년엔 거래처 담당 영업사원이었고, 가끔은 본사에서 지시한 소비자 불만 건도 직접 집에 찾아가서 처리했다. 퇴사 이후엔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느꼈다. ‘무례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내겐 천직을 거스를 만큼 싫다.

출판 사업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대부분 작가, 지식인, 예술가들이다. 그들은 자존심이 세기 때문에 상대하기 만만찮다. 그 자존심은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정신세계’에 대한 자존감이나 특권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 정신을 이해한다는 시그널만 잘 보내면, 까다로움 이면에 숨겨진 그들의 순수한 영혼을 발견할 수 있다. 창작가만이 뿜어내는 그런 순수함이 있다. 마치 숲속에서 느끼는 피톤치트처럼 그 순수함은 분명하고 확실하다. 그리고 신선하다.

물론 게중에는 보통 사람과 너무 다른 세계에 사는 나머지, 정상적으로 소통하기에 어려운 고객들도 있다. 그러나 하나는 분명하다. 비록 이런 작가, 지식인, 예술가들이 다소 까다로운 성격이더라도, 여전히 교양 있는 소수 그룹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오늘 누구와 함께, 누구를 위해 일했는가? 작가, 예술가, 지식인과 일했다. 이들의 품격이 내 자부심이다.

동료의 품격

채용할 때부터 ‘창작가’ 정체성을 중요하게 본다. 공고에도 그렇게 쓰고, 면접에서도 검증한다. 이렇게 뽑힌 동료들의 품격과 교양은 때론 그 자체로 치유적 힘이 있다.

노동의 의미

제아무리 치켜올려도 예술의 본질이 노동을 피해갈 수는 없다. 예술이라는 것도 결국엔 고통을 참고 밀어붙여야 하는 ‘노동’이다. 철학을 할 줄 아는 사람이면 종종 자신에게 이렇게 물을 것이다.

오늘 내 노동은 어떤 의미가 있었나.

경제적으로 내 생계를 이어주고, 동료들과 희노애락을 나누고, 나 자신의 기술적 자기계발과 장기적인 커리어 계발 같은 것들이 엉켜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노동도 “세상을 더 낫게 만들었다”라는 말은 하기 힘들 것이다.

출판 사업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씨앗이다. 시간을 넘어 영원히 기억되는 유산이다. 오늘 나의 노동은 그런 의미가 있었다.

나는 사업을 좋아한다.

나는 사업이 좋다. 내가 뜻한 것을 위해, 없던 길을 닦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일으키는 것이 좋다. 그런 과정이 나를 살아 있게 한다.

내가 하는 여러 사업중에, 나는 출판 사업을 좋아한다.

돈을 벌어서 좋다. 그런데 예술로 돈을 벌어서 더 좋다. 돈을 버는데 품격을 해치지 않아서 좋다.

그게 다가 아니다.

예술가와 철학자들을 고객으로 상대해서 좋다. 아무나 이해할 수 없는 특권에 슬며시 참여할 수 있어서 좋다.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 최신 트렌드를 다뤄야 해서 좋다. 예술과 과학의 중간지대라 더 좋다.

오늘 내 노동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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