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집 살림

첫 번째 살림

특별할 것 없는 신도시에 내 첫 번째 살림이 있다. 중소형 아파트에, 사랑하는 아내와, 중학생 딸, 초딩 아들과 산다. 아파트가 주는 무개성의 편안함이란… 여기엔 ‘내가 만든 가정’이라는 사명감과 의미 그리고 숭고함이 있다.

두 번째 살림

번아웃과 삶의 ‘의미 없음’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때 나를 구한 건 자연이었다. 숲이 주는 새로움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이런 저런 시도 끝에 강원도 자락에 나만의 터를 구했다. 여기서 나는 유튜브를 많이 찍고, 보통 사람-직장인-이 할 수 없는 시골 생활을 하고 글도 많이 썼다. 수도권에서 200킬로미터 떨어진 이 곳은 전기가 들어오는 것 빼고는 우리의 본성을 시험할 수 있는 아주 좋은 ‘태초‘에 가깝다. 아, 물론 렌트다. 말하자면 시골 구석의 캠핌장 한 켠에 세를 내고 언제든 갈 수 있는 살림을 마련한 셈이다. 6년째인 시골 동네엔 재밌는 풍경이 벌어진다. 내 안부를 묻고, 아이들의 성장에 함께 놀라고, 몇몇 분들은 내가 동네 토박인 줄 안다. 사진 속의 나는 영락 없는 농부다. 5일장이 들어서은 이 시골, 일탈이 주는 즐거움이 주는… 두 번째 살림엔 그런 맛이 있다. 

세 번째 살림

내 정체성이 곧 살림을 낳는다. 첫째 정체성이 가족이고 둘째가 작가라면, 내 세 번째 살림은 사업가라는 정체성에서 온다. 역세권 상가에 있는 전용 면적 스무 평짜리 방 세 칸 사무실엔, 탕비실도 있고 회의실도 있다. 나는 거기서 꿈을 꾸고, 그 꿈을 위해 박박 긴다. 주말에 두 번째 살림에서 돌아오면 가족들과 이 세 번째 살림을 같이 돌본다. 분리수거를 하고 아이들은 걸레로 바닥을 닦는다. 

세 집 살림을 하다 보니 휴지도 세 통, 간식도 세 번, 청소도 세 차례를 한다. 전화번호는 두 개, 컴퓨터도 여러 대다. 관리비용이 세 군데로 나간다.

이 세 군데를 번갈아가며 그에 맞는 내 역할을 잘 해내는 것이 마치 이번 생의 내 역할인 것 같다. 이것이 내 나름대로의 간소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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