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주로 회사 일이다.
그중엔 전략이나 상품 구성 같은 중장기적인 것도 있고, 당장 고객의 단순 문의에 답변해야 하는 즉흥적인 것도 있다. 이런 저런 일들이 쌓여서 내 손길을 대기 중이다. 읽고 처리해야 할 이메일이 100개 정도 쌓였다가, 이제야 30개 밑으로 내려왔다.
오늘도 일어나자 마자 밀린 일을 한다. 하도 키보드를 두드렸더니 손가락 끝이 아린다. 이렇게 책을 써야 하는데…
종일 책상에 앉아 있으니 목도 뻐근하고 허리도 아프다. 그런데 기분은 이상하게 좋다. 그 사실을 발견하고는 피식 웃었다. 그 이유가 너무 웃기다.
내가 어젯밤부터 하고 있는 일은 바로 견적 내는 작업이다.
얼마입니다. 이렇게 결제해주세요, 하고 돈을 달라고 말하는 작업이다. 이 일은 정중해야 하고, 그러나 센스도 있어야 하며, 단호해야 하고, 무엇보다 정확해야 한다. 고객마다 니즈가 다르므로 천편일률적으로 복붙을 하지 않기에 순간순간의 창의력과 주의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굉장한 강도의 정신 노동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견적을 요청했다는 것은 굉장히 높은 확률로 거래가 성사된다는 뜻이다. 내가 상담한 사람이 얼추 2천 명은 될 것 같다. 그래서 나만의 빅데이터가 있다.
견적을 줄 때 나는 짜릿함을 느낀다. 대부분 거래는, 견적이 나가고 반나절 안에 입금 문자가 온다.
띵동.
그 경험은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
견적은 곧 보상이라는 나만의 확증편향은 점점 강해진다.
그러므로 견적을 보낸다는 것은 나 스스로 파블로프의 개가 되는 상황에 자신을 구겨넣는, 자본주의 안에서 내 위치를 확인시키는 고귀한 리추얼이 되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기분이 좋다. 그것은 견적이다. 자본주의에서는 견적을 많이 내는 사람이 자유를 얻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