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어 실력
중학교 2학년이 된 딸 아이가 영어에 대해 고민이 많다. 덕분에 잊었던 기억을 몇 가지 떠올릴 수 있었는데, 잊기 전에 남기려 한다. 영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아니었지만, 영어는 내 인생에 상당히 영향을 끼쳤다. 사연은 나중에 보충하기로 하고 몇 가지 자랑거리만 늘어놓자. 나는 단 한 번도 영어 학원을 다닌 적이 없다. 그러나 지금도 영어로 된 토론은 […]
중학교 2학년이 된 딸 아이가 영어에 대해 고민이 많다. 덕분에 잊었던 기억을 몇 가지 떠올릴 수 있었는데, 잊기 전에 남기려 한다. 영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아니었지만, 영어는 내 인생에 상당히 영향을 끼쳤다. 사연은 나중에 보충하기로 하고 몇 가지 자랑거리만 늘어놓자. 나는 단 한 번도 영어 학원을 다닌 적이 없다. 그러나 지금도 영어로 된 토론은 […]
요즘 내 주변 사람들한테 들은 이야기 중 남기고 싶은 것들이다. 1. 운동 신경이 뭐, 아유, 좋습니다. 트레이너에게 케틀벨 스내치를 배우다가 들은 말이다. 내 인생에서 운동에 얽힌 특별한 기억은 없다. 그래서 이 말이 기분 좋게 기억된 것 같다. 이 말과 함께 고구마 줄기처럼 얽혀 나올 기억들도 함께 적어 본다. 초등학교까지는 나는 단거리 계주 선수였다. 그래봤자 운동회
아래 보고서는, 내 블로그 글 약 300여 편과 자료를 분석하여 200달러짜리 챗GPT o1 pro가 작성한 마작가에 대한 종합자료다. 누구든 인공지능으로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길이 열렸다. 자료가 있다면 그렇다. 나 자신을 기록으로 남긴 사람은 한 차원 더 높은 자기발견을 경험할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에 대한 기록이 없는 사람에겐 그 분석의 깊이가 얕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그를
열흘의 안식 휴가 안식 휴가를 가지기로 했다. 12월 마지막부터 1월 초까지, 휴일을 붙여 열흘 간 쉬기로 했다. 동료들과 모여 이야기했다. 각자 어떻게 열흘을 보낼지 궁금했다. 크로키를 그리겠다, 출간기획서를 쓰겠다, 인생 영화를 다시 보고 정리하겠다, 1년을 정리하는 글을 쓰겠다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열흘 동안 그 약속을 지키자고 다짐했다. 오늘로 열흘이 끝났다. 월요일이 되면 우리는 테이블에 모여
“Time is what we want most, but what we use worst.” William Penn (펜실베이아를 개척해 평등 사회를 꿈꿨던 영국의 퀘이커 종교지도자) 한 주를 되돌아 곱씹어 봤다. 스마트폰에서 내가 찍은 사진을 보지 않고서는 그날을 추적하기 어렵다. 사진이 없는 날은 아이들의 생생한 기억에 도움을 받았다. 이렇게 시간을 멈추고 잠시 되돌아 보는 시간이 없다면, 그냥 그렇게 스쳐가는 날은
그토록 열망했지만, 허비했던 그것 – 2023년 28주차 기록 더 읽기 »
나를 재촉하지 마라. 혼자만의 시간이 나를 바꾼다. 바쁜 일상은 정말 중요한 질문들을 하찮게 만든다. 때로는 질문 자체를 숨겨버린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들이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내가 타고난 기질은 무엇일까.”“그 길로 나는 가고 있는가.” 그 질문을 꺼내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하다. 여유가 필요하다. 누구도 나를 재촉하지 않고, 나도 나를 재촉하지 않는 시간. 그곳에 나를 놓아야
2024년 2월에 쓴 글. 열흘째 야근을 하고 있다. 오늘은 밤 10시까지 일했다. 사실은 열흘이 더 된 것 같다. 3주째 강원도 별장에 가지 못했다. 여기서 야근이란 내가 경영하고 있는 법인에서의 이야기다. 내 시간의 90%를 법인에 쏟아 붓고 있다. 당연히 정상적이지 않다. 내가 가진 3개의 정체성 중에 하나에만 몰두하다 보니, 나머지 정체성인 크리에이터로써, 자연인으로써 삶에 지장을 준다.
3년 전에는 월매출이 3천만 되면 모두가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월 3천을 만들기 위한 전략을 짜고 실행했다. 월 3천이 되었다. 마치 부자가 된 것 같았지만 크게 나아진 건 없었다. 사람이 더 필요했고, 더 큰 사무실이 필요했다. 물론 미래에 대한 불안을 덜했다. 그래도 월 5천에서 나오는 현금 흐름이 있으니까. 당장 몇 달 후가 아니라 몇 년
어떻게 하면 ‘하루를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해왔다. 내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운동, 공부, 쓰기, 가족 같은 항목에 가중치를 두고 밤마다 점수를 매겨서 기록했다. 수십 가지의 체크리스트를 만들기도 했고, 일어나서 몇 시 몇 분 지하철을 타는지, 15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그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다 부질 없었다.
지나고 나서 보니, 불행했던 시기는 늘 돈 생각을 많이 하던 때다. 밤마다 셈을 했고, 그럴수록 허탈하고 초조했다. 수십 년을 모아도 숫자의 끝은 초라했기 때문이다. 또 있다. 당시엔 하루하루가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성장 중이었던 시기도 있다. 매일을, 생각을, 기록을 글로 남겼던 때다. 힘이 빠지고 짜증나던 순간도 글로 쓰고 나면 별 것 아닌 일처럼 느껴졌다. 사실은 반대로